특별시민, 무엇이 특별한가 [김탁환 칼럼]
섬진강 들녘을 찾는 지인들에게 강조하곤 했다. “섬진강이 마르지 않는 한, 원할 때 논에 물을 채우지 못하는 날은 없을 겁니다.” 강물을 끌어들여 벼농사를 지으니, 섬진강을 노닐던 백로들까지 건너와선 먹이 활동을 열심히 한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올해로 6년째 손 모내기 준비를 마쳤다. 모판에서 먼저 심을 품종을 고르고 밀짚모자와 토시와 선크림까지 챙겼다. 그런데 물이 이미 들어찼어야 하는 날, 논은 갈라진 바닥이 다 드러날 정도였다. 우리 논뿐만 아니라 들녘에 물이 하나도 없었다. 섬진강 물을 모아 농수로로 올리는 양수기가 하필 고장이 난 것이다. 사흘이나 수리해도 고쳐지지 않았다. 혀를 쯧쯧 차며 양수 펌프장을 나온 농부들은 강둑에 서서 흐르는 강물을 쳐다보기만 했다. 동리산 태안사 가는 길은 곡성을 찾는 이들에게 또 하나의 자랑거리다. “태안사를 오가는 이는 8세기 중엽 통일신라 시대부터 지금까지 늘 이렇게 흙길을 걸었습니다.” 맨발로 걸어도 좋을 만큼 흙이 부드럽고 곱다고 덧붙였다.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까지를 시원하게 뒤흔든다며 웃곤 했다. 태안사 바로 앞 계곡에 놓인 다리 ‘능파각’에서 초등학생들에게 물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 흙길로 함께 올라와선 계곡물을 바라보며 명상을 한 뒤 다시 흙길을 내려가는 것으로 계획을 짰다. 그런데 1300년 동안 변함없던 흙길이 시멘트 길로 바뀌어 있었다. 아름다움은 정말 지키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수기로 끌어올린 물로 논을 그득 채운 뒤, 드디어 손 모내기를 시작했다. 이제 모내기에 익숙하냐는 이웃의 물음에 나는 들뜬 마음으로 답했다. “흙물이 무릎 바로 아래까지 차오른 논에 맨발로 들어가 6년이나 모를 심었으니까요.” 농사 스승은 웃으며 오늘은 논에 들어오지 말고 못줄을 잡아보라고 시켰다. 못줄잡이는 처음이었다. 쉽고 간단한 일이라고 여기긴 했다. 물 댄 논에 발을 넣는 것도 아니고, 논을 가로지르는 못줄과 논두렁 가까이 세로로 늘어선 못줄에 표시된 빨간 끈을 확인한 뒤, 간격에 맞춰 못줄을 옮기며 감거나 풀면 되는 줄 알았다. 모심기를 시작하자마자 문제가 터졌다. 모를 빼먹고 심지 않았거나 물에 뜰 정도로 얕게 심었거나 반대로 물에 전부 잠길 만큼 깊게 심은 곳을 지적하는 것도 못줄잡이의 일이었다. 그런데 모내기 참가자들의 이름을 미리 익히지 않았기에, 손을 들어 일일이 가리키며 지적할 수밖에 없었다. 서너번 목소리를 높인 뒤에야 겨우 문제가 되는 자리를 확인하고 모를 고쳐 심을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모를 심는 속도가 느려졌다. 오늘 처음 참가한 사람일수록 더 자주 허리를 펴고 더 많이 얼굴을 찡그렸다. 이 들녘에서 평생 벼를 키운 농부가 나를 향해 말했다. “유행가라도 한곡 뽑으쇼. 아니면 흰소리라도 늘어놓든가.” 모를 심느라 지친 이들을 독려하고 힘을 실어주는 일 또한 못줄잡이의 역할이었다. 묵묵히 모와 모 사이의 간격에만 신경을 쓰는 초보 못줄잡이가 얼마나 답답하고 한심했을까. 나는 손 모내기의 특별함을 반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서울특별시에서 20대엔 대학을 다녔고 40대엔 전업 작가로 글을 썼다. 인구 1000만명에 육박하는 거대 도시에선 이제 살 만큼 살았다고 여기고, 서울의 9할에 해당하는 넓은 면적에 2만7천명이 사는 전라남도 곡성군으로 내려왔다. 논농사와 밭농사도 배우고 동네책방도 열고 마을영화제도 하면서, 특별시에서와는 다른 삶을 6년째 꾸려나가는 중이다. 새벽까지 뜬눈으로 개표 방송을 시청하고 한숨 잔 뒤 읍내를 둘러보았다. 낙선사례와 당선사례 펼침막들이 어지러웠다. 그중에 ‘특별시민’이란 네 글자가 눈길을 끌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특별시민으로 살지 않으려고 섬진강 들녘을 택해 내려왔는데, 또 다른 특별시민이 된 것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자주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가끔 겪는 일이긴 하다. 외부의 결정이 내가 디딜 길과 품을 풍경을 한순간에 바꿔놓곤 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인수위원회의 이름이 ‘전남광주대전환기획위원회’라고 한다. 어디서부터 어디로의 대전환인가. 무엇이 특별한가. 서울특별시와 무엇이 비슷하고 무엇이 다른가. 지금까진 농촌이 소도시를 따라 하고 소도시가 대도시를 따라 하다가 낭패를 당하는 경우를 거듭 보았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만의 특별함이 도드라진 답을 기대하며 기다려야겠다. 대전환의 방향과 빠르기를 가늠하며, 그다음 걸음을 고민하는 이가 나뿐만은 아닐 듯하다.
📌 Kaynak
Bu özet Hankyoreh (KR) kaynağından otomatik derlenmiştir. Tamamı için orijinal habere gidin.
Orijinal haberi ok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