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셀 참사, 언론이 놓친 것들 [미디어 전망대]
2024년 6월24일 경기 화성의 리튬 배터리 제조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이 화재로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사망자 23명 중 18명이 이주노동자였다. 중국인 17명, 라오스인 1명. 공장의 이름은 아리셀이었다.
이미 알려진 대표적인 중대재해 사고를 굳이 설명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이 사건을 모르기 때문이다 . 이주민 활동가이자 희생자 유가족을 지원하는 박동찬은 대학 특강 때마다 수강생에게 아리셀 참사를 아는지 묻는다 . 혹여 아리셀이라는 공장명이 낯설까 싶어 화성 배터리 공장 폭발 사고로 바꿔 물어봐도 결과는 같았다 . 아무도 모른다 .
그해 겨울 그의 연락을 받았다 . 이주노동자 , 특히 중국 국적이라는 이유로 사고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잊히고 있다며 언론 보도 문제를 짚어달라는 요청이었다 . 수락은 했지만 , 선뜻 수긍하지 못했다 . 공장 쪽의 안전 책임을 묻고 처벌을 요구하며 , 불법파견 의혹을 제기하는 보도들이 나오지 않았던가 . 아리셀 참사 보도에 이주민 차별이 있었던가 .
그러나 그의 진단이 맞았다 . 아리셀 참사는 실제로 과소 재현되고 있었다 . 보도는 쏟아졌지만 ,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다 . 사고 발생 한주 동안 지상파 메인뉴스는 방송사마다 평균 30 건에 이르렀지만 , 7 월부터 연말까지 약 5 건에 그쳤다 . 신문 역시 6개 일간지(경향·동아·조선· 중앙·한겨레· 한국 ) 를 기준으로 사고 첫 주 21 건에서 이후 반년간 18 건으로 줄었다 . 그나마 진보 언론이 기사량을 유지한 결과였다 . 지상파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는 한번도 아리셀 참사를 다루지 않았다.
보도량의 문제만은 아니다 . 아리셀 참사 보도에는 언론의 고질적인 관행이 그대로 반복됐다 . 재난의 원인은 서서히 드러나지만 , 언론은 사고 직후 추정 보도를 쏟아내고 , 진상이 드러날수록 보도를 줄인다 . 서울 중심 보도 관행도 예외가 아니다 . 사고 장소가 화성이었다는 것만으로 보도는 전국 뉴스에서 밀려나 지역 뉴스로 빠르게 이동했다 .
시간이 흐를수록 사건은 재판 중심의 사법 프레임으로만 다뤄졌다 . 이주민 노동 조건과 산업 구조의 문제는 점차 사라졌다 . 사법 프레임은 ‘ 규제 위반 처벌 ’ 에 초점을 맞출 뿐 , 정부 · 기관 · 당국의 ‘ 규제 실패 책임 ’ 은 제대로 묻지 않았다 . 사회적 재난이 법적 사건으로 축소됐다 .
리튬에서 불이 났지만 , 참사는 리튬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 그러나 언론은 리튬전지의 위험성을 부각하는 만큼 위험의 외주화를 주목하지 않았다 . 희생자 대부분이 왜 중국동포인지 , 왜 여성이 다수였는지 규명하지 않았다 . 상당수는 인력사무소를 통해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모른 채 공장에 배치됐고 , 안전 교육도 받지 못했다 . 언론은 정부와 기업에 외주화의 책임을 묻는 대신 이주노동자에게 한국말을 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 . 중국말을 못 해서일까 . 언론이 재난 보도에서 흔히 활용하는 피해자 고통 중심의 서사마저 아리셀 참사에서는 사라졌다 .
참사가 지워지는 동안 책임자 처벌도 후퇴했다 . 항소심 재판부는 아리셀 대표에게 선고된 징역 15년을 4년으로 감형했다 . 참사 2주기를 앞두고 열린 애도의 밤 행사에서 기록 노동자 희정은 이렇게 말했다. “산업재해 피해자들을 가리키며 ‘그게 나였을 수 있잖아요’ 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 공장에서 죽은 이들은 나와 닮은 사람이 되기 어려웠다. 국적이 다른 이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는 죽어서도 평등하게 애도 받지 못한 이들이 죽음 너머에서는 존중받기를 바랐다. 신정아 백석예술대 교수는 최근 참사 2주기를 앞두고 열린 애도 행사의 타이틀, ‘내 무덤은 아리셀’은 침묵과 방치, 아직 끝나지 않은 고통의 증언이라고 말했다 . 그 증언이 계속되는 한 애도는 멈추지 않는다 . 언론도 그 애도의 자리에 함께하기를 바란다 .
📌 Kayn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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