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출산’ 담론이 원한 것과 놓친 것 [세상읽기]

📌 Diğer 📰 Hankyoreh (KR) 🕐 3 saat önce

몇해 전 한 연예인이 정자 기증을 통해 임신한 일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건강하게 출산한 뒤에, 아이와 함께 지내는 모습도 방송을 통해 소개되었다. 한편, 상대가 아빠 되기를 거부해 혼자 아기를 낳고 기르는 엄마의 힘든 이야기도 종종 언론에 등장한다. 혼인신고 없이 함께 살아가지만 아이를 갖고 싶다는 동거 커플의 바람도 간간이 들린다. 모두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출산이라는 뜻에서는 비혼출산이라 부를 수 있지만, 그 사정이나 형편은 서로 다르다.

그만큼 비혼출산이라는 말은 문맥에 따라 가리키는 현실이 달라진다. 그런데 기존의 정부나 정치권이 저출산과 관련하여 비혼출산을 언급할 때는 주로 동거 커플의 출산에 관심이 쏠린다. 결혼 감소가 출산 감소로 이어졌다는 판단 아래, 결혼이라는 문턱에 가로막힌 출산을 동거라는 다른 경로로 이어보겠다는 발상이 전제된다. 이때 자주 소환되는 사례가 혼외출산 비중이 절반을 넘는 프랑스다. 우리 사회도 동거를 제도적으로 수용하면 출산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작동한다.

과연 이런 논의가 우리 현실에 얼마나 맞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초저출산 현상을 결혼 제도의 경직성이나 비혼 증가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지난 수년간 청년들의 고용과 주거는 더 불안정해졌고, 돌봄과 양육의 부담은 커져왔다. 가족에 대한 의식과 태도 역시 전통보다 개인의 선택을 더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왔다. 이런 심대한 사회구조 변화 속에서, 결혼과 출산이 나란히 줄어든 것으로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결혼의 대안인 동거를 곧바로 출산과 묶는 논의도 다시 점검해야 한다. 동거 커플을 제도적으로 수용하는 문제와 저출산의 문제는 별도로 논의해야 할 의제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저출산 논의 속 비혼출산 이야기는 동거 커플의 출산을 전면에 내세우다 보니, 정작 더 취약한 조건에 놓인 미혼모와 미혼부의 현실은 논의 바깥으로 밀려난다. 동거 커플의 출산이 미래의 가능성으로 주목되는 사이, 미혼모와 미혼부의 ‘미혼출산’은 여전히 불편하고 예외적인 일로 남으며 침묵 속에 묻힌다. 그 결과 미혼출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더 굳어질 수 있다. 동거 커플의 출산이 앞으로의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라면, 미혼출산은 이미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미래를 멋지게 그려보자고 현재에서 눈을 돌릴 수는 없다.

우리 곁에서 더 자주, 더 절실하게 드러나는 비혼출산의 모습은 미혼출산이다. 예기치 못한 임신, 관계의 단절, 상대방의 양육 책임 외면 속에서도 출산은 이루어지고 있다. 절박한 현실의 가장 어두운 단면은 아이를 두고 떠나는 ‘베이비박스’로 드러나기도 한다. 아이를 지키려는 미혼모와 미혼부는 그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일자리를 포기하거나 불안정한 노동에 머무른다. 공적 지원을 받으려 해도 복잡한 절차와 부족한 네트워크 앞에서 쉽게 좌절한다.

이들의 어려움은 곧 아이의 삶으로 이어진다.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의료와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 성장 과정에서도 경제적 제약과 교육 환경의 한계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또래와 다른 가족 형태를 설명해야 하거나,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회적 거리감을 느끼며 위축될 수도 있다. 자신의 출생 조건을 스스로 선택한 적 없는 아이가 그 부담을 온전히 떠안게 된다.

2024년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가 시행되면서 국가가 아이의 출생을 확인하고 위기 임산부의 안전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가 마련되었다. 분명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이후의 삶까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한부모가족 지원 기준 완화와 양육비 선지급제 등 제도적 보완이 이어지고 있지만, 현장에서 체감하는 지원 수준과 접근성은 여전히 부족하다. 실제 양육 과정에서 느끼는 부담이 좀처럼 줄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미래의 출산 가능성을 넓히려는 정책적 고민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미 세상에 나온 아이들과 그 가정의 삶을 외면한 채 미래의 출산만 말할 수는 없다. 비혼출산 담론은 동거 커플에게 기대되는 출산뿐 아니라 미혼출산의 현실도 함께 담아야 한다. 부모가 누구인지, 어떤 조건에서 태어났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야 한다. 출산을 장려하는 사회라면, 이미 세상에 나온 아이들의 삶부터 먼저 책임질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 Kayn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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