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대박, 이재명 정부엔 ‘양날의 칼’ [안선희 칼럼]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의 천문학적 수익은 급기야 거시경제 지표들을 속속 바꾸고 있다. 1분기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10.5%)은 1976년 이후 50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연간 명목 지디피 성장률도 10%를 웃돌 것으로 관측된다. 명목 지디피가 증가하면서 이를 분모로 계산하는 국가채무비율도 51.4%에서 48%대로 뚝 떨어질 것이다. 올해 경상수지 흑자는 2500억달러로, 종전 사상 최대였던 1231억달러(2025년)의 두 배(!)를 웃돌 것으로 한국은행은 내다봤다. 두 회사의 법인세, 성과급 소득세 덕에 애초 전망보다 올해 세수는 50조원 이상, 내년 세수는 100조~150조원이 더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 코스피는 1년 반 만에 3배 넘게 올랐다. 주가 급등 덕에 국민연금의 고갈 시기도 10년 이상 연장됐다.
하지만 이 화려한 지표들은 공짜가 아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자산격차의 주범으로 부동산이 지목돼왔지만, 이제 주식도 ‘당당한’ 한 축으로 떠올랐다. 이번 급등기가 지나고 나면 주식 투자자와 비투자자, ‘큰손’과 ‘개미’ 사이의 격차는 더욱 확대돼 있을 것이다. ‘벼락거지’의 공포가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확대되고 있다. 소득격차 역시 커질 것이다. 내년 초부터 삼성전자(반도체 부문)와 에스케이하이닉스의 직원 11만여명이 수억원의 성과급을 받기 시작한다. 반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플랫폼 노동자들의 소득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매분기 발표되는 가계동향조사나 매년 발표되는 가계금융복지조사 등을 통해 꼬박꼬박 수치로 확인될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역대 최악의 양극화 정부’라는 오명을 안게 될지 모른다.
주식 투자로 번 돈과 억대 성과급이 부동산 시장으로 다시 흘러들어가며 이재명 정부가 사활을 걸고 있는 ‘부동산 안정’이라는 정책 목표의 복병으로 떠오를 가능성도 크다. 석달가량 하락세를 보였던 강남 아파트값이 지난달부터 상승세로 돌아섰고, 이른바 ‘반도체 벨트’라 이르는 경기도 화성 동탄, 평택, 성남, 수원 등의 아파트값 역시 들썩이고 있다.
반도체 초호황은 ‘인공지능(AI) 산업’의 부산물이다. 인공지능 투자 경쟁이 가열될수록 반도체는 많이 팔리겠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인공지능이 먹어치우는 산업과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다. 이미 청년층 고용률은 지난 4월까지 24개월째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는데, 특히 주니어 레벨 업무를 대체하는 데 탁월한 인공지능이 이 추세를 더 악화시킨다면 청년실업은 이재명 정부의 또 하나의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다.
정부가 해야 할 두 가지 단기 과제와 한 가지 장기 과제가 있다. 첫번째 단기 과제는 7월 발표할 세제개편안에서 부동산 세제를 정비하고, 금융투자소득세를 도입하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8일 기자회견에서 비거주 1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감면을 축소하고 보유세를 인상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민주당의 서울시장 선거 패배를 지렛대로 삼은 ‘부동산 증세는 안 된다’는 보수층의 압박을 거부한 것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열심히 일해서 버는 (근로소득에 대한) 세금은 절반 가까이 내는데, (부동산 양도차익은) 몇십억 돼도 세금이 거의 없다”고 옳게 지적하면서도, 같은 문제가 있는 주식 양도차익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코스피가 8000을 넘나드는 지금, 정부가 금투세 도입을 회피하는 것은 주식 투자자에 대한 ‘눈치 보기’ 외에 아무런 논리도 명분도 없다.
두번째 단기 과제는 8월 나올 내년 예산안에서 반도체 특수로 급증할 세수를 양극화 완화에 사용하는 것이다. ‘반도체 세수’ 활용 방안은 크게 ①국가부채 감축 ②국부펀드 등을 통해 새 성장동력에 투자 ③복지와 재분배에 투입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정부의 방점은 ②번에 찍혀 있는 듯하다. 성장잠재력을 키우고 그 수익으로 재정을 다시 튼튼하게 할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적극적 재분배 방안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자칫 ‘차원이 다른 양극화’가 진행되며 심각한 정치적·정책적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특히 청년층 일자리와 주거 문제에는 다소 파격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
장기 과제는 인공지능 관련 기업의 이른바 ‘초과이윤’의 사회적 배분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기업, 노동자, 주주, 협력회사, 국가라는 5대 이해관계자 간 가장 공정한 배분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부가 주도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야 한다. 어렵지만 피할 수 없는 문제다. 인공지능이 창출한 이익이 사회에 환원되는 구조 없이 일자리 파괴, 불평등 심화라는 사회적 비용만을 야기한다면 인공지능 기술 자체에 대한 저항이 커질 것이다. 세계화의 혜택이 소수에게 집중되면서 러스트벨트 노동자 등 ‘패자’들의 분노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을 불러오고 결국 세계화를 무너뜨리고 있는 현실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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