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무봉의 옷을 짓다, 임선옥 [크리틱]

📌 Diğer 📰 Hankyoreh (KR) 🕐 1 saat önce

무뚝뚝한 카센터 앞 횡단보도. 갑자기 비틀스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미래에서 걸어 나온 듯한 패션 선남선녀들의 런웨이가 펼쳐진다. 닫힌 공간의 패션쇼를 행인과 차량이 오가는 일상 한복판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무심한 거리에서 게릴라 패션쇼로 마법 같은 순간을 선사한 이는 디자이너 임선옥.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 부암동으로 향했다. 북한산 능선이 한눈에 펼쳐지는 자하문 고갯마루에 직선과 곡선이 너울진 독특한 지붕의 하얀 건물, 입구의 통창 가득 새겨진 붉은 디자이너의 초상이 시선을 붙든다. 이곳이 디자이너 임선옥의 스튜디오 랩이다.

말수 적은 미술학도였던 그는 화가를 꿈꿨지만 의류회사 그래픽 디자이너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전환점은 일본 연수 시절이었다. 검은 복식을 입은 이들이 하나의 흐름처럼 지나가는 모습에 매료돼 의류 디자인의 길로 들어섰다. 복장학원을 수석 졸업한 뒤 세계적 브랜드 ‘이세이 미야케’의 스카우트도 마다하고 귀국했다. 서울 강남 가로수길의 작은 차고에서 단돈 500만원으로 브랜드를 런칭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두어차례 좌절을 겪으며 가로수길을 떠났다. 패스트 패션 열풍 속에 수많은 옷이 쉽게 만들어지고 버려지는 현실에 무기력감을 느낀 그는 이후 ‘지속 가능성’이라는 화두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사옥 지층으로 들어서자 샘플 제작 현장이 펼쳐진다. 여느 의류 공방처럼 재단대나 미싱은 보이지 않았다. 천장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는 비계에 인더스트리얼 부품처럼 걸려 있는 소매와 몸판들.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마친 미래 소재의 옷들을 보니 에스에프 영화 속 어느 실험실에 와 있는 듯하다. “위 캔 솔브 에브리싱”(We can solve everything·어떤 문제든 풀 수 있다) 건물 곳곳에는 그가 오랫동안 궁구해온 문제의식을 짐작하게 하는 문구들이 단단하게 적혀 있었다.

그가 오직 디자인의 힘으로 찾은 해결의 핵심은 “원 머티리얼”(One Material·단일 소재), “제로 웨이스트”(Zero-Waste·쓰레기 배출 최소화)였다. 시즌이 지나면 쌓여가는 원단 재고와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그는 의류 산업의 구조적 문제로 바라봤다. ‘쓰레기 0퍼센트’를 위해 잠수복 원료를 바탕으로 원단을 단일화하고, 재단 과정에서도 자투리가 남지 않도록 치밀하게 패턴을 설계했다. 전통 방식의 바느질 대신 고열과 압력으로 솔기를 결합하는 무봉제 방식도 도입했다. 그야말로 현대판 ‘천의무봉’(天衣無縫)인 셈이다.

그가 특히 자부심을 드러낸 곳은 벽면을 가득 채운 디자인 아카이브였다. 치열한 연구의 결과와 기록을 기업 비밀로 감추지 않고 세상과 나누려는 열린 태도가 인상적이다. 의류 산업의 에코 비전을 찾아 국내외에서 찾아오는 이들과 워크숍을 진행하고 산학협력 프로그램도 연다고 했다. 이곳은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슬로 패션’의 허브다.

“지속 가능의 힘은 대체불가의 독창성에서 나옵니다.” 그는 단순히 스타일리시한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아니다. 의류 산업의 낡은 관성을 뒤집은 사람이다. 카센터 앞 도로를 런웨이로 바꾸며 고정관념을 깼던 그는 자신만의 ‘애비 로드’(비틀스가 건너던 횡단보도)를 성큼성큼 건너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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