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지도 말고 울지도 말고…노래가 끊기고 [이명석의 어차피 혼잔데]
여름이 다가오니 학교 괴담 한 토막. 나는 이상하게 초등학교와 딱 붙은 집에 사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이 집에선 학교 뒷마당이 내려다보인다. 담 주변엔 우람한 나무들, 등나무 덩굴 아래엔 작은 벤치, 오목조목한 화단엔 새와 곤충들이 숨어 있다. 저기 꽃그늘 아래서 숨바꼭질도 하고 비밀 기지도 만들면 참 재미있겠다 싶었다. 자 이제 무서운 이야기. 지난 십년 동안 거기에서 노는 아이를 하나도 보지 못했다.
끝이 아니다. 어느 날 요란한 굉음이 들리더니 뒷마당의 무성한 나무들을 밑동까지 싹둑 잘라냈다. 등나무 덩굴은 제초제를 썼는지 바짝 말려 죽였다. 건너편 아파트에서 벌레가 많다고 민원이라도 넣은 걸까? 그렇게 황폐해진 뜰에 거대한 환풍기가 들어왔다. 그래서 아침이면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아니라 에어컨 소음에 잠을 깬다. 그래도 아이들은 시원한 실내 어딘가에서 뛰어놀고 있겠지? 그렇지 않고 쥐죽은 듯 공부만 하고 있다면, 이건 아주 무서운 이야기다.
물론 학교에는 운동장이 있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도 아이들이 뛰어노는 걸 거의 보지 못했다. 굳게 닫힌 철문, 눈을 번뜩이는 학교 보안관,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살벌한 문구 때문에 긴 목을 뽑아 들여다보는 것조차 죄스럽게 여겨진다. 그러던 어느 날 요란한 음악과 함성에 잠을 깼다. 그래도 운동회는 신나게 하나 보네. 성능 좋은 스피커의 ‘할렐루야’ 소리에 깨달았다. 공휴일에 운동장을 빌린 종교 단체의 행사였다.
이런 와중에 이해할 수 없는 소식이 연이어 들린다. 지난해 학교 운동회 관련 112 신고가 350건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래서 학생들은 운동회를 앞두고 소음을 양해해 달라는 안내문을 써서 인근 아파트 단지에 붙인다. 학생들이 다칠 우려 때문에 점심과 방과 후에 축구, 야구 등을 아예 금지하는 학교들도 있단다.
그러면 아이들은 어디에서 노나? 맞아. 동네엔 놀이터가 있지. 하지만 독일의 놀이터 디자이너 귄터 벨치히가 한국의 놀이터를 보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주말이고 평일이고 아이들이 없다는데 놀랐다.’ 그런데도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에 외부 어린이가 들어왔다고 경찰에 신고하는 사람이 있다.
착잡한 마음으로 옥상에서 부채를 부치는데 어디선가 아이들의 함성과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래 골목길을 아무리 둘러봐도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저 너머 건물 3층에 태권도복이 어른거리는 걸 찾았다. 맞아. 요즘 태권도장이 방과 후의 아이들에게 다양한 놀이를 알려주고 간식까지 챙겨준다지. 그나마 다행이지만 저 좁은 실내에서 복작대는 게 진짜 놀이일까?
아이들은 어디에서 노는 게 제일 좋을까? 아무 데서나! 나는 읍내 시장에서 자라며 이 가게 저 가게 들락거리며 놀았던 재미를, 뻔한 놀이기구로 채워진 도시의 놀이터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서울에서 자란 친구는 공사장이 그렇게 재미있었다고 한다. 가림막의 숲을 돌아 하수관의 동굴을 지나 벽돌로 로봇 기지를 지었다고. 얼마 전 상가 앞에서 즐기던 피구를 금지당한 아이가 억울함을 토로하며 조목조목 어른들을 논박하는 호소문을 붙인 걸 보았다. 하지만 예전엔 아파트도 이렇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들은 어디서나 숨바꼭질과 구슬치기를 했고, 때론 주차장을 싹 비우고 동 대항 어린이 운동회를 했다고.
아이들은 아무 데서나 놀아도 되고, 어른들은 그걸 보호해줘야 한다. 아주 잠깐만이라도 안 될까? 한달에 한번 학교 주변 1㎞에 노란 동그라미를 그리고 어른도 차도 빠져주는 거다. 초등학생들끼리 놀다 다투거나 다치면 어떻게 하냐고? 중고생들이 청소년 보안관이 되어 돌봐주면 좋겠다.
유년기의 놀이는 즐거움만을 위한 게 아니다.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놀이 사회에서 경쟁하고 협동하고 이기고 또 진다. 몸과 마음의 상처는 당연하고 그 흉터를 어루만지며 성장한다. 작은 농구 코트를 다섯 팀이 함께 사용할 방법을 협상하며 민주주의를 익힌다. 그런 과정을 겪지 않고 어른이 된 이들의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함께 즐기는 놀이가 아니라 자기 몫을 챙기는 게임에만 열중하겠지. 요 며칠의 뉴스를 보니 우리는 이미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웃지도 말고 울지도 말고 움직이지 마.’ 그다음에 노래가 끊기면, 그것이 가장 큰 공포다.
📌 Kayn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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