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북한의 경제 성장
2020년 10월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경축 열병식이 열렸다. “인민의 너무도 크나큰 믿음을 받아 안기만 하면서, 언제나 제대로 한번 보답이 따르지 못해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목이 메어 눈물을 훔치는 ‘최고 존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모습에 광장에 모인 인민들도 함께 울었다. 당시 북한은 경제 제재와 코로나19, 수해의 3중고가 겹치며 김정은 정권 출범 뒤 최대 위기를 맞은 상황이었다.
그로부터 6년, 북한 경제가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0일 평양에 스마트폰 택시 호출과 정보무늬(QR코드) 결제뿐 아니라 음식 배달 서비스가 보편화했고, 시가지에선 중국산 전기차와 수입 차량이 도로를 누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러시아 타스 통신 사진을 보면 평양의 대동강 변 풍경은 첨단 고층 건물이 즐비한 중국 대도시를 옮겨놓은 듯하다. 한국은행은 2024년 북한의 경제성장률을 3.7%로 추산했다. 8년 만의 최고치다.
국제사회의 제재 속에 이뤄낸 북한의 깜짝 성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2024년 러시아와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뒤 북한은 러시아에 포탄과 미사일 등 무기를 공급한 대가로 100억달러(약 15조원) 이상을 벌어들였다. 1만5천명이 넘는 병력을 전쟁터에 보내면서 현금과 각종 인프라 지원까지 받았다. 1960~70년대 한국이 누린 ‘월남 특수’에 견줄 만하다.
북한 경제는 한국전쟁 뒤 재건기를 지나 1960년대 ‘군사-경제 병진’ 노선을 통해 10%대 안팎의 고성장을 기록했다.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대규모 경제원조와 남한과의 체제 경쟁, 권위주의 총동원 체제의 장점이 시너지를 발휘한 결과였다. 하지만 사회주의권 붕괴 뒤 북한의 권위주의 계획경제는 발전모델로서 수명을 다했다. 1997년 외환위기로 파탄을 경험한 박정희 모델과 같은 경로였다.
그러나 느닷없는 북한 경제의 성장은 여러 생각거리를 남긴다. 과실이 인민의 생활 개선으로 이어지기만 한다면 좋은 일이다. 문제는 중국처럼 ‘인민주권’을 결핍한 체제가 경제성장에서 효율성을 보이는 게 만들어낼 정치적 효과다. 최근엔 중국식 권위주의 정체가 성장뿐 아니라 인류의 미래가 걸린 기후위기 대응에도 유능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키워가고 있다. 이른바 ‘기후 마오주의’다. 생존의 절박함을 떠나 민주주의의 미래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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