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와 간담상조”하며 주변국 아픔 공감한 ‘진짜 보수’ 고노 요헤이 전 의장
11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하루 전 별세한 고노 요헤이 전 일본 중의원 의장과 한국의 인연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일 과거사 문제가 극도로 첨예하던 시절부터 한국의 야당 지도자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간과 쓸개를 서로 내보일 수 있을 만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것이다.
실제 고노 전 의장은 보수 정당인 자민당에 평생을 몸담으면서도 주변국과 우호 관계에 각별한 힘을 쏟아왔다. 그의 이름인 ‘요헤이’(洋平)부터가 “태평양의 파도가 잔잔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부모가 지어줬다고 한다. 특히 관방장관 시절이던 1993년 보수 세력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이른바 ‘고노 담화’를 발표한 게 대표적이다. 그는 당시 담화에서 일제강점기 위안부 피해자와 관련해 “위안소는 군 당국의 요청에 따라 마련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옛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했다”고 밝혔다.
중국과 우호 관계에도 정성을 들였다. 그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부주석 시절부터 직접 만난 것을 비롯해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 등 지도자급 30여명과 지난 20여년간 꾸준히 교류를 이어왔다. 중국 최고 실력자인 덩샤오핑 전 주석과도 친분을 유지했다. 지난해 말부터 중·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자, 병세가 깊어진 가운데서도 “가족들이 반대하고 있지만 마지막으로 중국에는 가고 싶다”는 뜻을 드러냈다고 한다. 또 지난달 병원에 입원해서까지 중국 방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일정을 조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22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정치인으로서 최대 목표는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 만큼 반전·평화를 중시하는 온건 보수적 태도를 견지해왔다. 1994년 외무상 자격으로 유엔(UN) 총회에 핵무기 폐기 결의안을 제출했다. 이 결의안이 유엔에서 30여년간 채택되고 있다. 중의원 의장이었던 2008년 피폭지인 히로시마시에서 주요 8개국(G8) 하원의장 회의를 열어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을 초청했다. 이후 고노 전 의장이 2차 대전 당시 일본이 침공했던 미국 진주만을 방문했는데, 2016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과 아베 신조 총리의 진주만 방문에 디딤돌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노 전 의장은 일본 국내에서는 존경받는 보수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30대이던 1967년 자민당의 금권·파벌 정치와 부패를 비판하며 탈당해 신자유클럽을 창당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자민당이 일본 정치 ‘절대 1강’이지만, 드물게 야당 시절이던 1993년부터 당 총재를 맡아 ‘총리가 되지 못한 1호 자민당 총재’로도 불렸다. 2003년부터 중의원 의장을 맡아 2029일간 재임하며 족적을 남겼다. 일선에서 은퇴한 뒤에는 집권 자민당에 평화헌법 수호 세력이나 온건 보수파들이 사라져 가는 상황을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아사히신문은 “고노 전 의장의 정치 인생이 역설적으로 자민당의 포용력 깊던 과거 좋은 시절을 상징하는 듯하다”고 돌아봤다.
일본 정치권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애도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전날 엑스(X·옛 트위터)에 그가 “여·야 협조를 중시하며 공정하고 원활한 의회 운영에 헌신했다”고 평가했다. 오시마 다다모리 전 국회의장은 “고노 전 의장으로부터 공정하고 공평한 국회 운영의 중요성을 배웠다”고 말했다. 야당인 중도개혁연합 시나 다케시 간사장은 “보수 정치가이면서 관용과 포용의 정신을 가진 리버럴 정치가로 매우 존경했다”고 추모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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