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무능·방만함 부르는 선관위 체계 뜯어고쳐야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일으킨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투표용지 최소 인쇄 기준을 하향 조정하는 결정을 사무총장의 전결로 처리했다고 한다. 투표용지 관리는 선관위의 핵심 업무 가운데 하나인데, 선관위원들을 패싱하고 사무총장이 최종 결정했다니 어이가 없다.
중앙선관위는 지난해 12월10일 허철훈 사무총장의 전결로 본투표 투표용지 인쇄 매수 하한 기준을 기존 ‘유권자 수의 60%’에서 50%로 낮췄다. 사전투표가 늘어나는 추세에 맞춰 인쇄를 줄인 것이라고 한다. 중앙선관위는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각 3명씩 임명·선출하는 선관위원들이 전체회의에서 최종 의사를 결정한다. 선관위법과 관련 규칙에 따르면 사무처는 위원회의 결정을 보좌·집행하는 조직일 뿐, 국민의 투표권 행사와 직결되는 중대한 결정을 내릴 권한이 없다. 투표용지가 부족하면 선거를 제대로 치를 수 없기 때문에 투표용지 관리는 선거 업무의 핵심이다. 이런 중요한 결정을 법적 권한이 없는 사무총장의 전결로 처리한 것이다. 중앙선관위는 현직 대법관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헌법기관이다. 그런데 조직은 법과 원칙에 맞지 않게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직원들의 근무 기강도 심각하게 해이한 상태다. 전국 단위 선거 때마다 선관위 직원 휴직자가 늘어났다가 선거가 끝나면 감소하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전북선관위는 이번 전북교육감 선거에서 일부 투표소의 개표 결과를 잘못 입력한 사실을 뒤늦게 파악하고도 선관위원장에게 나흘 뒤에야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선관위는 ‘사후 조처’에는 발 빠른 모습을 보였다. 지난 10일 서울동부지법이 증거보전을 위해 투표용지 보관 상자 확보에 나섰지만, 선관위는 법적 보관 의무가 없다는 이유로 전날 폐기해 버렸다. 이번 사태의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증거인멸’ 행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현직 대법관이 위원장을 겸직하는 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선관위원장이 비상임인 체제인 탓에 조직 장악력이 약하고 책임감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시·군·구 선관위도 해당 지방법원의 부장판사가 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선관위 상근 직원들이 다 결정을 해놓고 도장 찍을 때만 위원장에게 보고하는 식이다. 경찰은 11일 경기도 과천 중앙선관위와 서울시선관위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를 통해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한 뒤 선관위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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