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작전통제권과 헌법 [이석태 칼럼]
작전통제권(Operation Control)은 군대를 운용하고 작전을 수행하도록 지휘·통제하는 권한이다. 이는 평시 작전통제권과 전시 작전통제권으로 나뉘는데, 현재 평시 작전통제권은 한국군 합참의장에게, 전시 작전통제권은 미군 대장이 지휘하는 한미연합군사령부 사령관에게 있다. 군 작전통제권의 자주적 행사는 독립국가의 기본 원칙이다. 군대의 존재는 한 나라의 주권과 안보를 결정적으로 좌우하고, 군대를 운용하는 것은 작전통제권을 바탕으로 하므로, 군 작전통제권은 주권 행사의 핵심적인 내용이 된다.
역사적으로 임시정부 시절 광복군의 무장투쟁을 제한하려고 했던 중국 정부에 대하여 독자적인 군대 지휘권을 주장하여 관철시킨 예가 있다. 1941년 10월 중국 국민당은 한국광복군을 승인하고 지원을 개시했다. 그러나 얼마 뒤 중국 군사위원회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앞으로 “한국광복군은 중국의 항일작전 기간 중국 군사위원회에 예속돼 중국군 참모총장이 장악해 운용한다”는 등 ‘한국광복군 활동 준승 9개 항’을 하달했다. 한마디로 광복군은 중국군의 보조군대라는 말이었다. 임시정부는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광복군을 운용해야 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를 받아들였으나, 광복군이 중국군의 작전 지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치욕으로 여겼다. 결국 3년간에 걸친 끈질긴 교섭 끝에 1944년 9월 마침내 중국의 9개 준승 폐기를 얻어 내어 광복군의 작전지휘권을 찾아왔다.
한편 1970년대 베트남 파병 시절 채명신 주월 한국군 사령관은 미군과 독립하여 자율적으로 군 작전 지휘권을 행사했다. 그는 주월 한국군 사령관으로 근무하면서 맹호부대, 백마부대, 청룡부대 등 한국군 전체를 지휘했다. 채 장군은 한국군이 미국의 용병으로 비치는 것을 우려했다. 그의 회고록에는 지휘권의 확보를 위해 박정희 대통령을 설득한 내용과, 베트남 현장에서 미국 주월 사령관을 비롯한 미국 장성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나온다. 채 사령관은 한국군이 미군의 지원을 받았지만 작전 지역 설정, 병력 운용, 작전 수행 방식 등에서는 독립적인 권한을 행사했다고 말한다. 그는 주권 국가라면 자국 군대를 스스로 지휘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헌법은 전시 작전통제권에 관한 직접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그러나 헌법 60조 1항은 “국회는 상호원조 또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 중요한 국제조직에 관한 조약, 우호통상항해조약, 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 강화조약,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작전통제권을 외국 군대에 맡기는 것은 군사적 ‘주권의 제약’으로 여겨지므로,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또 66조 2항은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 영토의 보전,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고 하여 대통령에게 국가의 주권을 지킬 책무를 부과하고 있고, 74조 1항은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군을 통수한다”고 규정하여 대통령에게 국군통수권자로서 직접 군 작전통제권을 행사할 책임을 부과한다. 아울러 헌법 89조는 “선전·강화 기타 중요한 대외정책”(2호)과 “군사에 관한 중요사항”(6호)은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치도록 규정하여, 국무회의를 거치지 아니하고 작전통제권을 외국 군대에 넘기는 경우 위헌의 소지가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에게 군 작전지휘권을 넘긴 것은 한국전쟁이 시작된 직후인 1950년 7월14일이었다. 당시 이 대통령은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에게 서신을 보내 ‘현 적대 상태가 계속되는 동안 일체의 군 지휘권을 이양한다’고 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로 대한민국을 위해 파병하는 나라들의 군대를 통할하는 유엔군사령부가 창설되었다. 맥아더 사령관은 ‘대한민국 육·해·공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맡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승리를 확신한다’는 답신을 보내왔다. 이에 한국의 군 작전지휘권은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에게 넘겨졌으며, 1978년 한미연합군사령부 창설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러던 중 1987년 대선을 앞두고 노태우 후보는 작전통제권 환수를 공약했다. 그러나 미국은 평시 작전통제권만 돌려주고 전시 작전통제권은 그대로 유지했다. 평시 작전통제권은 김영삼 대통령 때인 1994년 12월1일 돌아왔다. 이어 노무현 대통령 때인 2007년 2월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2012년 4월17일까지 전시 작전통제권을 환수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정부를 거치며 시기와 조건이 여러차례 조정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10월 한-미 연례안보회의에서 한국군이 북한의 핵무기 및 장거리 미사일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한 연후 작전통제권을 환수하기로 합의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작전지휘권을 넘겼을 당시 비록 전쟁 중이었지만 국회는 해산되지 않은 상태였고 국무회의 역시 존속되고 있었다. 지금 헌법과 달리 제헌 헌법은 국회 동의를 요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의 국회 의결이나 국무회의 심의 절차 등을 거치지 않고 군사주권을 이양한 것이다. 이후 지금까지 한국의 전시 작전통제권에 대해 국회가 별도로 동의한 바가 없다. 1954년 정전 협정 이후 한·미의 합의에 따라 작전지휘권은 작전통제권으로 조정되었으나, 헌법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흠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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