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과 만국래조의 꿈 [코즈모폴리턴]

📌 Diğer 📰 Hankyoreh (KR) 🕐 1 saat önce

코끼리를 앞세운 사절단도 있고, 네덜란드식 모자를 눌러쓴 이도, 서역에서 온 사람도 보인다. ‘조선국’이라 적힌 깃발 아래 공복 차림의 사신들도 품에 한아름 공물을 안고 차례를 기다린다. 미얀마·타이·류큐(오키나와)에서 유럽에 이르기까지, 수십개국에서 온 사신들과 조공품이 태화문 안쪽의 건륭제를 알현하기 위해 줄지어 서 있다.

베이징 고궁박물원에 보관된 1761년 작 만국래조도(萬國來朝圖) 속 풍경이다. ‘만국래조’란 말 그대로 하늘 아래 ‘만국’이 사신을 보내 건륭제에게 조공을 바친다는 의미다.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믿었던 건륭제의 제국적 이상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다만 수많은 외국 사신이 한날한시에 모여 건륭제를 만나려고 했다는 기록은 없어, 그림은 건륭제의 청이 꿈꾼 세계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중국사의 최전성기를 누렸다는 건륭제가 사망하고 반세기도 지나지 않아 천하를 호령했던 제국은 사그라들었다.

자금성 앞마당에 코끼리와 공물을 든 인파 대신 오늘날 베이징에는 각국에서 날아온 전용기가 줄지어 내리고 있다. 전통적 친중 국가들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시작으로 이재명 대통령과 캐나다·영국·독일·스페인 총리가 잇따라 베이징을 찾았다. 영국과 캐나다 정상의 방중은 8년 만이었다. 불과 반년 만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중 자국을 제외한 나머지 4개국 정상을 안방에서 맞은 나라는 중국이 처음이다. 중국이 내부 정치 일정에 매달렸던 3월 한달을 빼면 5월까지 매달 평균 4차례 큰 손님치레를 한 것이다. 이 정도면 ‘21세기 만국래조도’라도 그려야 할 판이다.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9년 만의 방중도 빼놓을 수 없다. 관세 전쟁에서 이란 전쟁까지, 두번째 임기에 국제 질서를 뒤흔들어온 트럼프도 베이징에서의 사흘은 평소와 달리 절제된 언행을 보였다. 되레 기존 패권국과 부상국이 충돌하기 쉽다는 이른바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꺼내 들고, 대만을 둘러싼 ‘레드라인’을 이례적이고 노골적인 언어로 강조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접근법이 관전자들을 놀라게 했다. 9년 전 자금성을 내어주며 ‘사상 최대 규모’ 계약으로 트럼프를 맞았던 시진핑은 이번엔 트럼프 도착 전날 ‘레드라인’을 못 박은 채 트럼프와 ‘천하의 제단’ 톈탄(천단)을 나란히 거닐었다. 이제는 주요 2개국(G2) 시대가 열렸다는 중국의 연출이 설득력을 얻은 장면이었다. 말을 삼가던 트럼프는 베이징 하늘을 벗어나자 본래의 화법을 되찾았고, 세기의 회담은 시진핑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그런 시진핑이 8~9일 7년 만에 평양을 찾았다. 미국과 ‘새로운 전략적 안정 관계’를 선언한 지 3주 만이자, 올 들어 첫 국외 방문지로 북한을 택한 것이다. 그 자체로 워싱턴을 향해 발신할 메시지가 강했기에, 지난달 흘러나온 시 주석의 방북설에 ‘그럴 리 없다’는 관측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평양에 갔다. 시 주석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회담에서 양국 간 “발전 전략 연계를 강화”하겠다면서 “외교, 법 집행, 군사 교류 강화”도 강조했다. 만국래조를 실현한 시 주석이 평양에 간 이유, 시 주석이 찾아오게 만든 북한의 입지 변화 또한 주목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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