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읽는 ‘뇌 임플란트’, 루게릭병 환자도 집에서 의사 소통 척척
그동안 전문가의 세밀한 관리가 필요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제한됐던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일명 뇌 임플란트가 가정에서 환자가 스스로 쓸 수 있을 정도로 실용성을 갖추게 됐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는 행동이나 말과 관련한 뇌 신호를 해석해 로봇 팔다리를 작동시키거나 음성이나 문자로 전환해 줌으로써 사지 마비 환자나 말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돕는 장치를 말한다.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UC 데이비스) 연구진은 루게릭병 환자 케이시 해럴(47)이 자신의 집에서 일상적으로 뇌 임플란트를 이용해 약 2년간 정상적인 의사소통을 하는 데 성공한 사례를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2023년 해럴의 뇌에 미세 전극을 이식한 뒤, 일정한 교육 기간을 거쳐 가정에서 혼자서 기기를 사용하도록 했다. 지난 2020년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해렐은 당시 점차 사지가 마비되고 언어 능력을 상실해 가고 있었다. 머릿속으로는 하고 싶은 말이 맴돌았지만, 입 밖으로는 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태였다. 연구진은 해럴의 대뇌 피질 중 언어를 담당하는 영역에 총 256개의 미세 전극이 들어 있는 4개의 전극칩을 심었다. 환자가 특정 단어나 문장을 말하려고 생각할 때 발생하는 뇌의 전기 신호를 포착하기 위해서다. 칩이 읽어낸 뇌파 신호는 컴퓨터로 전송된 뒤,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거쳐 모니터에 문자로 변환돼 표시된다. 결과는 놀라웠다. 해럴의 의사소통 속도는 분당 평균 56단어에 달했다. 일반적인 음성 대화 속도에는 못 미치지만, 기존의 장치보다는 훨씬 빠른 속도다. 해렐이 실제로 말하려는 문장의 해독 정확도는 92%에 육박했다. 뇌 신호를 해독하는 성능 평가에서는 12만5천 단어 규모의 어휘 체계 기준으로 정확도가 99%를 넘었다. 해럴은 연구진 도움 없이 독립적으로 사용한 19개월 동안 거의 매일 집에서 이 기기를 사용했다. 이 기간 중 그가 집에서 뇌파로 전달한 문장은 18만개, 단어는 196만개였다. 특히 이 장치에는 그가 병을 얻기 전 녹음해 둔 자신의 음성을 활용해, 인공지능이 그의 원래 목소리와 유사한 합성 음성으로 문장을 읽어주는 기능도 있다. 뇌 신호만으로 자신의 목소리까지 찾은 셈이다. 이번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뇌 임플란트 장치를 가정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실용성을 처음으로 입증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연구는 대부분 복잡한 장비와 전문가들이 대기하고 있는 실험실에서 주로 이뤄졌거나 가정에서 사용한 경우엔 정확도와 속도 등의 효율이 크게 떨어졌다. 이 장치는 또 해럴이 손을 움직이려고 생각할 때 나오는 뇌 신호를 이용해 컴퓨터 마우스 커서를 조작하는 데도 성공했다. 덕분에 그는 집에서 이메일을 보내고 인터넷 검색을 하는 것은 물론, 투병 전 직업이었던 기후위기 관련 시민단체 활동가 일도 다시 할 수 있게 됐다. 해럴은 네이처 인터뷰에서 “이 기술은 혁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덕분에 계속 일하면서 돈도 벌 수 있었고, 가족들은 물론 집에 찾아오기를 꺼렸던 친구들과도 다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아내가 제 목소리를 듣고 달콤한 추억을 떠올리는 모습을 보는 것, 그리고 소리를 잃기 전의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딸에게 내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다는 것도 큰 기쁨”이라고 덧붙였다. 이 장치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이 시스템은 개인 정보 보호 기능이 있어서, 사용자가 원할 경우 이 장치에서 연구원들에게 데이터가 전송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이다. 연구를 주도한 니컬러스 카드 교수(신경공학)는 이 기능을 추가한 것에 대해 “앞으로 기업들이 음성 기반 뇌 임플란트 기술을 개선해 나갈 때, 어떤 기능을 포함시킬 수 있을지 본보기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대학의 크리스티안 헤르프 교수(계산신경과학)는 “이번 연구에 쓰인 장치는 실제로 환자의 일상 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며 “이제 BCI는 연구 도구가 아닌 진정한 의료기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용화를 위해선 해결해야 할 기술적 과제가 아직 남아 있다. 현재 시스템은 환자의 두피 밖으로 노출된 티타늄 커넥터와 컴퓨터를 유선 케이블로 연결해야 한다. 이는 미관상 불편할 뿐더러 감염 위험도 있다. 해럴은 “앞으로는 머리에 커넥터를 부착하고 다닐 필요가 없도록 이 장치가 휴대도 가능하고 무선으로 작동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별도의 해독 장치를 거치지 않고 뇌 신호가 곧바로 음성으로 변환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카드 교수는 “현재 뇌파를 음성으로 직접 변환할 수 있도록 장치를 개선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Long-term independent use of an intracortical brain–computer interface for speech and cursor control. Nat Med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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