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이어령부터 김혜순, 나희덕까지…지성들 손때 묻은 장서 도서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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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김종철, 김수환, 이어령, 백낙청, 신인령, 김혜순, 최재천…. 그야말로 ‘한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성들의 손때 묻은 장서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게 됐다. 16일 공식 재개관한 서울 강북구 ‘더숲 아카데미하우스’의 ‘사유의 숲’이다. 개발독재 시대, 지성의 요람 구실을 했던 아카데미하우스의 정신을 고스란히 담아낸 사유의 숲은 각 분야 선각자 30여명의 장서로 서가를 채운 인물 도서관으로, 북한산 자락의 탁 트인 자연 속에 터를 잡았다. “장서 목록이 제 한계를 너무 그대로 드러내는 것 같아서 크게 부담이 됐습니다. 어찌 보면 제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책들을 다시 보며, 제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게 되기도 하고 그 부박함과 초라함에 부끄러워지기도 했습니다.” 사유의 숲에 장서를 기증한 문인 중 한명인 나희덕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시인)는 이날 개관식에서 대표로 축사에 나서서 이렇게 말했다. 겸손의 말과 달리, 나 시인의 서가는 방문객에 대한 배려와 그의 다양한 관심 분야를 담은 100여권의 장서로 촘촘히 채워져 있다. 아카데미하우스 쪽의 요청대로 저서와 추천하고 싶은 기증 도서를 선별하고 ‘내 인생에 각별한 의미가 있는 책’ 10권을 별도로 추천했다. 사유의 숲이 특별한 것은 “사회 곳곳에서 먼저 고민하고 실천했던 선배들이 밤새워 읽으며 밑줄을 긋고 사색했던 ‘공부의 흔적’”을 그대로 만지며, 그들의 저서와 추천 도서 3천여권을 읽을 수 있다는 데 있다. 닦아도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헌책의 손때는 되레 대화의 손길이다. 책 속에 철 지난 고지서나 영수증이 껴 있는 경우도 더러 있어 이는 제거했지만, 포스트잇이나 메모는 독자들을 위해 그대로 남겨 뒀다고 한다. 돌베개 출판사를 통해 도서관에 기증된 신영복 선생의 서가 속 ‘중국역대시가선집’(기세춘)엔 여전히 선생이 직접 붙인 포스트잇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글 쓰는 이들에게 책은 삶의 기록이고, 그 자체로 사유의 경로다. 내밀한 사유의 조각이 담긴 메모들이 즐비한 장서들을 떠나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고 나희덕 시인은 설명했다. 나 시인은 “한 20년은 더 봐야 할 책들이어서 (탁무권 더숲 아카데미하우스 대표에게) ‘어떻게 이 책들을 보내라고 하느냐’고 항의도 했다”며 웃음 섞인 성토를 내놓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나 시인은 일부 도서를 ‘복본’ 격으로 새로 구입해 기증했다. 그럼에도 시인의 손결이 그대로 느껴질 정도로 낡은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파블로 네루다)를 선뜻 기증한 데서, 이번 프로젝트에 누구보다 진심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 시대 지성들의 ‘사유의 지도’를 걸어볼 수 있다는 것도 이 도서관만이 가진 매력이다. △시대와 가치(신영복) △영원과 구원(김수환·강원용·채수일·법륜·이정배) △생명과 자연(김종철·김정현·최재천·최열·이준호·허태임) △인간과 사회 (백낙청·이어령·강인숙·신인령·최순영·임경석·홍성욱·조희연·장필화·이상화·박명림) △예술과 영혼(이정희·박명숙·남정호·김혜순·이강백·박종호·나희덕·김탁환) 등 다섯 가지 범주를 두고 두루 서가의 인물을 선정했는데, 한 사람의 서가에서도 다양한 책을 만나볼 수 있다. 유전학자인 이준호 서울대 교수(생명과학부)는 “전공을 비롯한 학술 서적들이 한쪽을 차지한다면 다른 한쪽은 제 사회적 아이덴티티를 구성한 책들”이라고 설명했다. ‘이기적 유전자’나 ‘종의 기원’ 같은 과학책뿐 아니라 ‘26년’ 등의 만화책, ‘마르크스 평전’과 박노해 시집, 대하소설 ‘태백산맥’ 등이 나란히 그의 서가에 꽂혔다. 경남 진주 출신으로 ‘김장하 장학생’인 이 교수는 또 다른 ‘김장하 키즈’인 문형배 판사의 ‘호의에 대하여’와 ‘어른 김장하 각본’도 함께 기증했다. 반면 임경석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철저히 전공인 근현대사에 초점을 맞췄다. 그가 끊임없이 도전해 온 ‘이념의 성역’이 여전히 우리 역사에 굳건한 까닭이다. 임 교수는 “민족 해방과 민주주의라는 두 가지 중요한 공동체 규범을 중심으로 그 관점에 호소력 있는 책을 특히 추천하려 했다. 님 웨일스의 ‘아리랑’이 대표적이다. 근현대사에서 일종의 금기가 된 이념 문제를 뛰어넘으려 한 저작들을 독자들에게 더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카데미하우스 쪽은 “손때가 묻은 서가 사이를 거닐며, 그들이 마주했던 질문과 고민을 함께 따라가다 보면 세상을 바라보았던 그들의 깊은 눈길과 뜨거운 손길을 온전히 느끼게 될 것”이라며 “그들이 우리 사회와 세계를 향해 던졌던 질문 위에서 여러분만의 답을 채워 나가시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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