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이 총애한 선관위, 그 예정된 배반 [박용현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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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관리위원회의 위상이 우리나라처럼 높고 공고한 나라는 드물다. 미국·영국·프랑스 등 전통적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는 행정부가 선거 관리를 실질적으로 수행한다. 비교적 뒤늦게 민주주의로 이행한 나라들은 선관위를 행정부로부터 독립된 기관으로 설치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들 나라도 거의 대부분 ‘법률’ 차원에서 선관위를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처럼 선관위가 헌법에 규정된 ‘독립적 헌법기관’인 경우는 필리핀, 인도, 엘살바도르 등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우리 헌법이 이토록 선관위를 총애하게 된 이유는 분명하다. 1960년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 때문이다. 그때까지 별도의 선거 관리 기관을 두지 않다가 같은 해 제2공화국 헌법에 처음 선관위가 명시됐다. 이후 중앙선관위원의 신분을 보장하는 등 꾸준히 독립성 강화 규정을 헌법에 추가했다. 물론 박정희·전두환 독재 시대에는 선관위의 실질적 독립성을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관권선거가 판쳤고, 대통령을 간접선거로 뽑을 만큼 선거제도 자체가 후진적이었다. 1987년 거리를 뒤덮었던 민주화 함성은 결국 직선제 도입을 통한 ‘참정권 회복’으로 모아졌다. 민주주의를 쟁취한 국민적 열기는 매번 선거를 달궜고, 선관위는 세계적으로 드문 헌법적 위상을 명실상부하게 확보해나갔다. 그로부터 약 40년. 6·3 지방선거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터졌다. 선관위의 방만한 조직 기강과 공직윤리 해이가 용납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르렀다. 3·15 부정선거라는 뼈아픈 역사를 통해 잉태됐고 지난한 민주화를 거쳐 독립적 헌법기관으로 우뚝 섰던 선관위가 어느새 국민의 참정권을 침해하는 부실 기관이자 특권에 찌든 부패 기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원인은 선관위가 독립적 헌법기관이라는 방패 뒤에서 아무런 외부 견제·통제 없이 권한만 누려왔다는 데 있다. 지난해 헌법재판소는 자녀 특혜 채용 논란과 관련해 ‘선관위는 감사원의 직무 감찰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헌법 해석을 내놨다. 헌법이 튼실한 울타리를 쳐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선관위가 헌법적 의무를 충실히 이행할지 여부는 오로지 자체의 사명의식에 맡겨진다. 우리 헌법은 그것이 지속가능하다고 낙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사명의식이 특권의식으로 바뀌는 데는 4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헌법이 부여한 독립성이 되레 본연의 임무를 배반하는 악성세포의 자양분이 됐다. 지독한 아이러니지만,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든 나타날 필연적 결과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선거 관리 제도의 철저한 개혁이라는 과제와 함께 중요한 헌법적 질문을 던진다.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으면서도 독립성이 부여되는 국가기관에 대해 어떻게 국민적 통제를 가하고 책임을 지울 것이냐는 질문이다. 특정 기관에 독립성을 부여하는 건 그 임무 수행에서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함인데, 독립성과 함께 책임성이라는 또 하나의 기둥이 받쳐주지 않을 때 공정성이라는 대들보마저 무너지는 위험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는 선관위에만 국한되는 질문도 아니다. 빼놓을 수 없는 게 사법부다. 사법부는 우리 헌법이 총애하는 또 하나의 기관이다. 공정한 재판이라는 목적을 위해 거의 무한대의 독립성을 부여했다. 특히 대법원장은 ‘황제 대법원장’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만큼 막강한 권한을 가진다. 대법원장 한명에게 대법관 임명제청권을 주는 헌법 조항은 유례를 찾기 힘들다. 법관 인사·징계와 법원 행정에 외부의 견제가 작동할 여지가 없는 것도 세계적으로 드문 경우다. 그러나 선관위가 밟아온 길처럼, 사법부도 외부와 단절된 성채 안에서 독립성을 특권으로 변질시켰다. 어떤 상황에서도 헌법과 인권을 수호하라는 뜻에서 독립성이라는 울타리를 쳐줬지만, 사법부는 헌법을 유린한 내란 앞에서 여러 차례 국민을 배반했다. 그러고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향응·금품 수수가 드러난 판사들의 징계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독립기관이 아니라 주권자 눈치를 볼 필요조차 없는 권력독점기관이 됐다. 앞서 ‘사법농단’ 사태에서도 그 폐해가 확인된 바 있다. 이 역시 독립성에만 주목하고 책임성과 국민주권 실현이라는 가치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헌법이 자초한 배반이다. 현행 헌법이 시대적 한계로 포착하지 못했던 문제점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40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날카로워진 주권 감수성에 맞춰 헌법도 한 단계 도약할 때가 됐다. 이번 선관위 사태가 그 출발점이 된다면 전화위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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