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장 인선, 비전·혁신을 기준 삼아야 [왜냐면]
차기 국립발레단장 인선을 둘러싸고 무용계 안팎에서 소문과 하마평이 무성하다. 최근에는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허황된 뜬소문”이라며 직접 반박하는 이례적인 상황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누가 단장이 되느냐’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이 아니다. 국립발레단이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것은 인물의 출신 성분이 아니라, 미래를 이끌어갈 비전과 혁신 역량이다. 지난 10여년간 국립발레단은 뛰어난 기술적 성과를 거두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발레단으로 성장했지만, 작품을 창·제작하지 못하고, 수입에 의존해왔다. 또한 조직 내부적으로는 방역수칙 위반 논란, 단원들의 겸직 및 외부 활동 문제, 무용수 인권 및 인사관리의 헛점 등 조직 문화와 운영 시스템 전반의 결함을 드러냈다. 진정한 리더는 단순히 조직을 현상 유지하는 관리자가 아니다. 구성원이 보지 못하는 미래를 먼저 보고, 익숙한 관행을 넘어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개척자다. 특히 문화예술 기관의 리더는 과거의 영광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새로운 관객을 발굴하며,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을 열어가야 한다. 타성에 젖으면 잘못된 관행마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우리 문화예술계는 이미 그런 안타까운 사례들을 경험했다. 국립발레단이 지금 필요한 것은 과거의 성과를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용기다. 스스로 혁신하지 못하는 조직은 결국 외부의 충격에 의해 타율적으로 변화 당할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 등 기술은 급변하고 관객의 취향과 문화 소비 방식도 요동치고 있다. 과거의 성공 방정식으로는 미래를 설명할 수 없다. 오늘의 국립발레단을 ‘관리’할 사람이 아니라, 10년 뒤 케이(K)-발레의 미래를 ‘설계’할 혜안을 가진 리더가 절실한 이유다. 한국 발레계 현실상 어느 분이 단장이 되더라도 단기간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새로운 이정표는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새로운 아이디어와 상상력으로 조직을 수혈하고, 관객과 소통하며, 발레의 저변을 넓혀갈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국립발레단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 대표 예술기관이다. 소수 엘리트만을 위한 성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더 많은 국민이 발레를 향유하게 하고, 경제·지역적 한계로 기회를 얻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도 꿈을 보여주어야 한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가 보여주듯, 예술적 재능은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국립발레단은 대한민국 도처에서 발레를 꿈꾸는 또 다른 ‘빌리 엘리어트’들의 든든한 희망이 되어야 한다. 직업 무용수 출신이냐, 아니냐는 지엽적인 문제다. 중요한 것은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발레의 미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가, 기존의 이해관계와 관행에 물들지 않은 시선으로 조직을 바라볼 수 있는가이다. 따라서 차기 단장은 진영 논리가 아닌, ‘케이-발레 미래 비전 제시’ ‘조직 문화 혁신’ ‘케이-발레 저변 확대’라는 세가지 기준으로 인선해야 한다. 국립발레단이 과거의 성과를 넘어 끊임없이 배우고 진화하는 조직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익숙한 사람을 찾는 관행을 깨고 새로운 시대를 이끌 진정한 리더를 맞이할 때, 대한민국 발레의 새로운 미래도 비로소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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