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번과 플래트너라는 사례 [장석준의 그래도 진보정치]
지금 미국 정치는 중간선거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 가운데 두 후보가 눈길을 끈다. 한 사람은 네브래스카주 상원의원 후보 댄 오즈번이고, 다른 한 사람은 메인주 상원의원 후보 그레이엄 플래트너다. 오즈번은 2년 전에도 상원의원에 도전한 전력이 있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무소속이다. 양당 정치의 본고장 미국에서 무소속은 주목받기 힘들다. 하지만 오즈번의 경우는 다르다. 2년 전 선거에서 그는 46.52%를 득표하며 공화당 소속 당선자를 7%포인트 차로 추격했다. 오즈번이 공화당 후보를 이길 가능성이 더 크다고 인정한 민주당은 지난 선거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자체 후보를 내지 않기로 했다. 오즈번은 왜 무소속을 고집할까? 네브래스카주가 워낙 공화당 강세라 전술적으로 ‘민주당’ 간판을 피하는 것일까? 그보다는 정치적 신념 때문이다. 오즈번은 해군, 주 방위군으로 복무했고, 오랫동안 기계공으로 일했다. 최근 이런 백인 노동자 중 다수가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공화당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오즈번은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식품산업노동조합에서 활동하고 파업에 앞장서다 해고됐다. 노동운동가로 성장한 오즈번은 선거에서 민주당 간판을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지지 후보로 정하겠다는 민주당의 제안마저 단호히 거절했다. 기득권 엘리트와 결탁한 양당이 미국이 직면한 모든 문제의 원흉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가의 주장과 겹치는 일부 공약(국경 통제 강화, 총기 소유 권리 보장 등)과 함께 최저임금 인상, 노동조합 활동 보장, 부자 증세 등을 주창하며 독자적인 포퓰리즘 노선을 추구한다. 이런 오즈번을 빼닮은 또 다른 후보가 플래트너다. 플래트너는 오즈번과 달리 민주당 예비경선에 뛰어들어 민주당 후보가 되는 쪽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의 이력과 색깔은 오즈번의 판박이다. 해병대에 입대해 이라크에서 8년을 보냈고, 다시 주 방위군에 들어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했다. 제대 후에는 메인주에 정착해 굴 양식을 했고, 이후 진보적 포퓰리즘의 대의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플래트너도 오즈번처럼 과두정치에 맞서 노동계급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고 다짐한다. 오즈번과 플래트너의 사례에는 진보정치를 둘러싼 여러 쟁점이 담겼다. 민주당에 독립적인 노동자정당이 등장할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가 하면, 마가의 주장과 일부 겹치면서도 진보적 경제 정책을 추구하는 정치 노선이 과연 가능하겠냐는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쟁점은, 일론 머스크 같은 조만장자의 극우 선동이나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현실에서 진보정치가 노동 대중에게 말을 걸고 공감과 동의를 끌어낼 방도다. 오즈번과 플래트너의 사례는 이런 상황일수록 가장 단순한 접근법이 유효하다고 시사한다. 그 접근법이란, 대중이 ‘우리 중의 한 사람’으로 받아들일 만한 인물을 통해 발언하고 설득하는 것이다. 오즈번은 네브래스카 농민의 투박한 상식에 공감하는 인물이다. 플래트너의 몸에는 전우들과 함께 새긴 나치 친위대 문양의 문신이 있다. 진보파라면 경악할 만한 뉴스거리이지만, 바로 이런 배경을 지닌 정치가야말로 이 혼돈의 시대에 편견과 반감의 두터운 장벽을 뚫을 수 있다. 이것은 세대 간 단절과 대립이 위험 수준에 도달한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20~30대의 언어로 신자유주의나 극우와는 다른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젊은 정치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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