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없는 기업’ 선관위…“무책임 구조 개선, 위기대응 시스템 구축 시급”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4·19 혁명 도화선이 된 1960년 3·15 부정선거 이후 ‘관권선거’를 막자는 취지로 1963년 헌법상 독립기구로 설립된 뒤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해왔다. 그러나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63년 선관위 체제’의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앙선관위가 그동안 외부 감시와 통제에서 벗어나 있던 것이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되며 17일 정치권에선 개헌 필요성과 더불어 해체 수준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분출한다. 다만 선관위의 독립성을 보장한 헌법 정신과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면 개헌보다 중앙선관위원장 상임화와 중앙선관위 내 독립 감사기구 설치 등을 통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지방선거 당일(3일) 서울 송파구 선관위는 투표용지 부족을 그날 오전 11시40분께 인지하고, 서울시 선관위에 알렸지만 서울시 선관위 담당 직원은 상임위원이나 사무처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같은 날 오후 5시가 넘어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중앙선관위와 함께 대응에 나섰다. 국민들은 위기 대응에 무력하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라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준 중앙선관위와 17개 시·도 선관위, 255개 시·군·구 선관위의 존재 의미를 묻고 있다. 먼저 전문가들은 위원장 포함 9명의 선관위원 중 8명이 비상임직인 현행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선관위 전체가 기강이 해이한 조직이 돼버린 가장 큰 이유는 ‘주인 없는 기업’처럼 운영됐다는 것”이라며 “본업이 있는 비상임 선관위원들이 선관위 전체 업무를 제대로 파악했겠느냐. 이들이 한 결정의 의미나 깊이가 약해지고 조직 전체의 관리·감독이 부실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선거 관리 업무에 전념하고 책임을 질 수 있는 상임위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앙선관위원장과 시·도 선관위원장 상임화가 대안으로 거론된다. 다만 더불어민주당 ‘선거제도 개혁 태스크포스(TF)’가 17일 주최한 토론회에서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위원장의 상임화 여부보다 사무처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라며 “객관적으로 (조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으로 사무총장이나 상임위원을 위촉하는 것은 어떻겠나”라고 제안했다. 현재 여야 모두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중앙선관위도 감사원의 직무감찰을 받거나 외부 감시가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헌법상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로부터 독립된 헌법기관인 선관위를 감사원의 감사 대상으로 명시하는 개헌 필요성을 제기한다. 현재 감사원은 중앙선관위에 대해 회계감사 외에 감사를 할 수 없다. 감사원이 2023년 5월 선관위의 채용 특혜 의혹에 직무감찰을 하자 선관위는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는데, 헌재는 지난 2월 감사원의 감사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선관위의 독립성을 침해했다’는 판단이다. 관권 선거를 막기 위해 특정 정권, 정치세력이 영향을 끼칠 수 없도록 한 헌법의 울타리가 역설적으로 선관위의 ‘방패’가 된 것이다. 그러나 개헌을 통해 선관위의 독립성을 흔들 경우 앞으로 정권의 입김에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게 나온다. 민주당 티에프 토론회에서 정 명예교수는 “감사원은 대통령 소속 헌법기관이라는 점에서 선관위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집권세력이 감사권이나 인사권을 통해 선관위에 영향을 미칠 경우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다. 이에 정 명예교수는 독립적인 선거관리평가위 설치, 국회에 대한 정기 보고의 제도화, 선거 사고 보고, 재발 방지 의무 법제화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김규범 국가공무원노조 선관위지부 위원장은 한겨레에 “대통령 아래 있는 감사원의 감사를 받게 되면 대통령으로부터 선관위가 자유로울 수 없다. 선관위가 감사를 받더라도 이런 우려가 해소돼야 한다”고 했다. 한편 구조개혁과 더불어 선거관리 역량 강화와 선거사무 모델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크다. 특히 비상 상황에 무력한 선관위의 위기 대응 체계 개선도 중요하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겨레에 “돌발 상황이 생기면 정확한 보고를 받고 대처를 일사불란하게 할 수 있는 ‘5분 대기조’ 같은 체계가 선관위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투표용지 부족 재발을 막기 위해 본투표도 사전투표처럼 투표용지를 인쇄하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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