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천루, 숲, 갯벌에서 탄소를 세는 사람들… “숫자는 당연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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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활동으로 대기에 배출된 이산화탄소는 온실효과를 일으킨다. 파괴적인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선 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하지만, 이는 무엇보다 ‘숫자’를 정확히 알아야 가능한 일이다. 지구 대기에 탄소가 얼마나 많은지, 어디에서 배출돼 어디로 가는지, 그중 인간은 얼마나 기여하는지 등이다. 그렇다면, 기후위기를 인식하고 대응하는 일의 핵심에 언제나 ‘탄소를 세는 과학’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산속에서, 갯벌에서, 축사에서 과학자들이 건져낸 이 숫자들이 우리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한 논의의 바탕이니까. 이달 말까지 열리는 제23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서 ‘관객심사단상’을 받은 ‘탄소를 세는 사람들’은 바로 이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4명의 감독(김성은·전치형·백윤석·김정각) 가운데 그 자신 역시 과학자인 김성은 고려대 교수(국제학부)와 전치형 카이스트 교수(과학기술정책대학원)를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김 교수의 연구 주제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논문뿐 아니라 대중에게 폭넓게 다가갈 수 있게 다큐멘터리까지 제작해보자고 한 제안이 이번 작품을 낳았다. 영화에는 크게 다섯 곳의 ‘탄소를 세는’ 현장이 나온다. 광주과학기술원(GIST) 환경에너지공학과 연구팀은 서울 신도림역 인근 고층건물 옥상에서 도시의 대기에 이산화탄소가 얼마나 있는지를 측정한다. 서울대 산림과학부 연구팀은 경기 광주 태화산학술림에 세워진 41m 높이의 타워 등에서 숲속 이산화탄소를 연구한다. 전북 군산 고군산군도의 섬 신시도리에서는 군산대 해양생물자원학과 연구팀이 갯벌의 탄소 저장을 살핀다. 일본 홋카이도에 있는 전세계 최남단 이탄습지(식물·이끼가 분해되지 않은 채 쌓여 있는 땅)에서는 홋카이도대 우류연구소 연구팀이 습지의 탄소를 ‘센다’. 강원도의 서울대 평창캠퍼스 연구팀은 소가 트림·방귀로 배출하는 메탄의 양을 줄이는 연구를 한다. 그간 기후변화에 대한 지식이 쌓이고 논의가 퍼지면서, 이산화탄소 농도나 배출량 같은 이야기는 대중에게도 생소하지 않다. 그러나 그 기초가 되는 숫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대중도, 정작 과학자들도 잘 알지 못한다. 영화는 여러 정보가 혼탁하게 얽힌 현장에서 숫자를 건져 올리는 일이 실제 어떻게 이뤄지는지 담담히 보여준다. 탄소를 세는 일은 아무런 의도 없이 자로 잰 듯 빈틈없고 완전무결하게 이뤄지기 어렵다. 그 결과물인 숫자도 무 자르듯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장비를 챙겨 현장으로 출퇴근을 반복하며 조금이라도 나은 결과를 얻고자 하는 것이 과학자의 일이다. 옥상에 올라가 도시 대기를 측정하는 건, 건물들로부터 받는 간섭을 배제하기 위해서다. 적어도 100~200m 높이까지 올라가야 한다. 숲속 관측탑을 오르는 중간엔 에프킬러가 비치돼 있다. 장비 오류 가능성이 많은 여름에 더 자주 관측탑을 오르는데, 여름엔 벌이 많다. 인적이 드문 홋카이도 숲을 다니려면 곰 퇴치용 장비를 꼭 지녀야 한다. 땅속에서 채취한 흙 샘플을 잘 여밀 땐 쿠킹호일·쿠킹랩 같은 주방용품도 쓴다. 설치해둔 센서는 언제든 거미, 산짐승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메탄을 덜 내뿜는 소’ 연구자들은 “‘소고기를 먹지 말자’며 관련 학과와 시장(축산업)을 아예 버릴 것이 아니라, 줄일 수 있을 만큼 줄여보자”는 생각으로 실험한다. 김 교수와 전 교수는 “과학자들은 각자의 현장에서 묵묵히 탄소를 세지만, 서로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지 않다. 이번 작업이 우리 모두가 ‘탄소 세기’의 기쁨과 슬픔, 복잡다단함을 나눌 계기가 되길 바랐다”고 말했다. 영화에 직접 나오지 않지만, 이들이 논문에 썼던 ‘불순한 숫자’란 표현(“탄소를 세는 과학은 불순한 숫자를 다루는 작업이다”)은 이 영화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전 교수는 “숫자는 진흙탕에서 찾아서 다듬고 어려움을 겪으며 겨우겨우 만들어지며, 누가 어떤 동기로 어떻게 하느냐 등에도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런 숫자가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국가 정책의 기반이 된다. 이들은 ‘불순하다’는 표현에 “숫자가 엉터리라거나 정직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지는 복잡다단한 과정을 인식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가질 수 있는 지식이 오직 불순한 것이라면, 그런 지식의 한계와 조건을 인식한 상태에서 우리가 어떻게 더 믿을 만한 지식을 만들어갈 것인지 토론이 필요하다”고 했다. 숫자를 신봉하거나 불신하지도 않으면서,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를 논의의 대상으로 삼자는 것이다. 흔히 쓰이는 측정(measure), 회계(account)란 표현 대신 ‘센다’(counting)는 표현을 쓴 데에도, 숫자가 사회적·문화적·정치적으로 더 폭넓은 논의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뜻이 담겼다. 고무적인 것은, 이 영화가 ‘관객심사단상’을 받았단 사실이다. 선명한 메시지를 내세우는 환경·생태 영화도, 과학의 성취를 ‘있어 보이게’ 그린 과학 영화도 아닌데 말이다. 전 교수는 “기후 문제를 얘기하는 하나의 통로를 제시하려 한 노력에 대중들이 공감해준 것 같아 기쁘다”고 했다. 두 사람은 더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보고 ‘탄소를 세는 과학’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기를, 또 이 영화가 다양한 과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갑론을박하는 계기를 제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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