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생각난 ‘다이내믹 코리아’ [뉴스룸에서]
‘빨리빨리’로 대표되는 한국 문화, 초고속 성장으로 압축되는 한국 경제를 상징하는 말로 ‘다이내믹 코리아’는 기억에 남는 국가 슬로건이었다. 시엔엔(CNN)이 세계화를 대표하던 시절, 국가 홍보 광고로 만들어져 나라 밖으로 알려졌다. 즐비한 빌딩, 거리 응원, 전통 공연 등 한국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영상에 원어민 억양으로 “다이내믹 코리아”로 끝나는 광고를 보면서 ‘맞다 게보린’, 아니 ‘맞다 코리아’ 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국가 브랜드로 만들어진 이 슬로건은 단순히 경제성장을 넘어 우리가 아는 한국 사회의 본질을 꿰뚫어 울림을 주었다. 어느새 20년, 짐작과는 달리 케이(K) 열풍이 세계로 뻗어갔고, 생각하지도 못한 대통령 탄핵이 두번이나 있었다. 그렇게 다이내믹 코리아에서 20년은 정신없이 흘렀다. 지난 6·3 지방선거 개표일, 다음날 새벽 3시까지 근무를 하고 집으로 갔다. 긴장이 가라앉지 않아 새벽 4시가 넘어서야 겨우 눈을 붙였는데 휴대폰 소리가 얕은 잠을 깨웠다. 아침 7시49분 정치부장이 “서울시장 1위가 바뀌어서 기사를 보냈는데 빨리 편집해주세요”라고 전화로 부탁했다. 잠결에 정신이 몽롱했지만 내용이 너무 놀라워 “응?” 소리가 절로 나왔다. 잠들기 전까지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를 상당히 앞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권에서는 ‘눈 떠보니 후진국’이었는데, 정권은 바뀌어도 ‘눈 떠보니 다른 세상’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다이내믹 코리아’에 살고 있다. 선거 결과도 어질어질한데 선거 과정은 더 어질어질했다. 서울 송파구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모자랐다는 짧은 기사를 보는데 슬픈 예감이 밀려왔다. 젠슨 황도 ‘케이-젠슨’으로 불러달라고 할 만큼 발전한 이 나라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하다니 상상도 못 했다. 철 지난 부정선거의 망령을 살려내며 6·3 지방선거는 오늘도 끝나지 않고 올림픽공원 집회로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까지 다이내믹할 필요는 없는데, 그렇게까지 다이내믹한 나라에서 한겨레 디지털 기사 조회 수가 시시각각 그래프로 표시되는 일을 하고 있다. 지난 3월24일치 ‘뉴스룸에서’ 칼럼에서 스스로를 ‘조회 수 요정’이라고 자조했는데 그마저도 오만했다. 당시만 해도 그래프는 ‘맑음’이었는데 갑자기 ‘흐림’으로 변했다. 새벽마다 일을 벌이던 도널드 트럼프가 잠잠해지고, 우리를 탈출한 늑구도 돌아오면서 ‘조회 수 요정’도 사라졌다. 6·3 지방선거는 내 마음처럼 가라앉은 그래프를 일으켜 세우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통제하기 어려운 요소들에 좌우돼 ‘갑자기’ 벌어진 일이다. 10년 전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나를 뽑아달라’(Pick Me)고 노래하던 걸그룹 아이오아이(I.O.I)가 해체한 지 9년 만에 돌아와 컴백곡 ‘갑자기’를 부르고 차트 1위를 휩쓸더니 다시 흩어졌다. 당분간 아이오아이는 못 보지만, 중독성 강한 노래는 남았다. 요즘 한숨 한번 쉬고 “갑자기~”를 흥얼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노래 가사가 심금을 울린다.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너에 대한 생각에 잠겨~” 이 가사처럼 조회 수란 그런 것이다. 영어 섞인 가사를 조금 더 인용하면 “‘인 더 미드나이트’(In the midnight), 심야에 갑자기 생각나서 ‘틸 더 모닝’(Till the morning),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생각나는 그런 것이다. 조회 수만이 아니다. 우리는 갈수록 우리가 통제하지 못하는 것들의 영향을 더 강하게 받으면서 살아간다. 드라마 제목을 빌리면,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 무기력함과 싸우고 있다. 우리는 통제하지 못하는 변수 속에서 그저 속수무책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오늘도 디지털뉴스부는 요약되지 않는 기사를 짧은 제목에 욱여넣으려 애쓰면서 노동의 수레바퀴를 돌린다. 그것이 비록 뜻대로 되는 것이 별로 없는 시대란 것을 확인하는 일이라 해도 달리 하지 않을 방도가 없다. 다시 드라마 대사를 빌리면 나는 ‘빙’(Being), 존재하고 싶은데 세상은 ‘두잉’(Doing), 무언가 끝없이 하라고 한다.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몰라도, 뭐든 삽질 같아도 우리는 해야만 한다. 중독성이 강한 아이오아이 노래는 “너 뭔데 갑자기”로 끝난다. 알기도 모르기도 하는 ‘너’와 함께 우리는 오늘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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