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강경해진 이란…중동 패권싸움, 이제 시작
100일 넘게 이어진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이 종전 양해각서(MOU) 합의와 함께 외견상 평화를 찾았지만, 중동 내 힘의 균형을 둘러싼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전쟁의 성과를 발판 삼아 더욱 강경해진 이란은 중동 맹주 자리 복귀를 노리고, 취약한 안보 상황을 절감한 걸프국가들은 이를 경계하며 이란·미국과의 관계 재설정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종전 합의에서 소외된 이스라엘이 협상판을 흔들려 하는 가운데, 중동 질서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번 전쟁을 통해 이란은 새 지도부의 등장과 막대한 전후 복구 지원과 제재 해제라는 혜택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중동 전문가들은 이란에 등장한 새 지도부에 주목한다. 미 존스홉킨스대 중동학과의 발리 나스르 교수와 나르게스 바조글리 부교수는 지난 3일 ‘포린 어페어스’에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에 성인이 된 실용적이고 강경한 민족주의자인 새로운 세대의 지도자들이 정권을 장악했다”며 “전쟁이 탄생시킨 새 이란은 수년간 중동의 지형을 바꾸고 지정학적 흐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쟁 첫날 폭사한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를 대신한 새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강경 세력을 중심으로 전쟁을 이끌었다. 미국과 60일 협상 과정에서 핵 프로그램 제한을 받아들이는 대가로 이란이 받아내려는 전후 복구 지원과 제재 해제도 이란의 미래와 중동 세력 구도를 바꿀 핵심 사안이다. 9천만 인구와 넓은 국토, 페르시아 역사와 문화, 막대한 석유·가스 매장량, 강한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때 ‘중동의 독일’로 불렸던 이란이 40년 넘게 묶여 있던 제재의 족쇄를 풀게 되면 중동 내 이란의 위상은 달라질 수 있다. 다만, 대이란 제재 해제와 3천억달러 규모로 거론되는 전후 복구 지원이 빠른 속도로 이뤄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백승훈 한국외대 중동연구소 전임연구원은 17일 한겨레에 “아직 이란 새 지도층이 내부를 완전히 장악하진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주도권을 계속 쥘 수 있는 경제특구처럼 방식·영역을 한정해 속도 조절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에서 자국 경제 발전에 쓰겠다는 호르무즈해협 서비스 비용 부과도 실행되기 어려울 것이란 전문가들이 많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기존에 갈등을 겪던 걸프국가들의 분열은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탈석유 시대를 맞아 첨단산업·관광·무역 중심지로 거듭나려는 걸프국가들은 이번 전쟁으로 미래 청사진의 전제 조건인 ‘정세 안정’이 뒤흔들리는 현실을 맞닥뜨렸다. 미국도 꺾지 못한 이란의 군사력을 약화시킬 방도가 마땅치 않은 걸프국가들로선 이란과 안정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문병준 전 주사우디대사대리는 “걸프국가들의 이란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지만 그럴수록 이란과 관계를 평화적으로 관리하려 할 것”이라며 “특히 아랍에미리트는 가장 많은 공격을 받았지만 이란과 지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너무 가까워, 종전 이후 양국 관계 회복이 급진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 아랍에미리트는 공격 중단을 조건으로 이란에 30억달러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이스라엘과 이란 간 갈등을 냉각시킬 요인은 보이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강하게 요구해왔던 이란의 미사일 제한과 역내 대리세력 지원 중단은 미국과 이란의 60일 협상 의제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꼬드겨 이번 전쟁을 일으킨 이스라엘은 미-이란 간 협상 진척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구책을 마련하거나, 협상 자체를 흔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 대사는 “미국과 60일 협상과 이후 합의 이행 과정에서 이란이 조금이라도 약속을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면 이스라엘이 다시 공격하자고 미국을 자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걸프국가들에 없어서는 안 될 동맹 세력으로 남겠지만 이번 전쟁에서 걸프국가들이 확인한 건 미국의 예측 불가능성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걸프국가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전쟁을 일으켰고, 전쟁 중엔 쏟아지는 이란의 무인기와 미사일을 제대로 막아주지 못했다. 뉴욕타임스는 15일 복수의 걸프국가 관계자들을 인용해 이들 정부가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걸프국가들이 안보에서 미국 의존도를 줄이고 다각화를 추구하는 것은 한국에 기회이기도 하다. 백 연구원은 “한국의 걸프국 무기 수출은 이란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방어 무기 이상으로 확대하지 않고, 현지에 군수 공장을 만들고 일자리를 창출해주는 방식의 패키지 협력 구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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