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탄 자욱 가득 옛 기관차고에 한국 현대미술 지형도가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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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전황이 인천상륙작전으로 급변한 1950년 9월25일, 반격을 시작한 국군과 유엔군은 서부 경남 요충 도시 진주를 수복했다. 당시 진주를 점령했던 북한 군대는 중국 팔로군 출신 최정예 부대로, 호남을 휩쓸고 마산까지 쳐들어갔던 인민군 6사단이었다. 불과 두달 전 주민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공무원과 군경이 퇴각하는 바람에 진주에 무혈입성했던 6사단은 국군과 시가 전투를 벌이다 패주했다. 시가전이 치열하게 벌어진 곳은 진주역 일대였다. 미군 전투기가 역 건물과 열차 정비창을 기관총으로 집중 공격하고, 인근 시내에는 소이탄을 투하해 불바다를 만들었다. 숱한 주민이 숨졌고, 진주역사는 폐허가 됐다. 인민군이 지휘본부를 차렸던 남강변 촉석루도 잿더미로 변했다. 수복 뒤엔 부역자 사냥이 자행됐다. 양민들이 역 광장 등에 끌려와 고초를 치렀고, 상당수는 학살당했다. 지금은 진주 강남동 철도문화공원 명소로 변신한 옛 진주역 차량정비고(기관차고)는 76년 전 벌어졌던 민족사의 비극을 샅샅이 목격한 역사의 증인 같은 건축물이다. 1925년 지어진 건물은 흉터투성이다. 증기기관차가 드나들던 2개의 아치형 문이 있는 붉은 벽돌 건물 외벽에 한국전쟁 당시 무수한 기관총탄 자욱이 남아 역사의 생채기를 드러낸다. 이 곡절 많은 건물 공간에 지난 15일부터 지금 한국 미술판을 대표하는 원로·중견·소장 예술가들이 합심해 전시판을 펼쳐놓았다. 196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작가들이 쌓고 다진 현대미술 작품들이 일종의 지형도처럼 들어앉은 것이다. 기관차가 쉬는 집이었던 층고 10m, 넓이 602㎡(182평)의 전시장에 구현된 한국 현대미술 지형도는 구도가 낯설면서도 흥미진진하다. 무엇보다 구세대와 차세대 작가들의 구작·근작을 처음 한자리에 모아 엮었다는 점이 새롭다. 예컨대 원로 작가 신학철이 20대 시절 그린 대작은 2020년대 두각을 드러낸 청년 작가 이우성의 그림과 마주보며 기운을 나눈다. 파이프 배선 같은 기하학적 선이 1960년대 말 신문 기사 스크랩과 결합한 노화가의 50여년 전 회화는 서로 어깨를 겯은 젊은이들이 연대의 아우성을 울리는 지금 청년 작가의 걸개 그림과 교감하는 구도의 장면을 펼쳐낸다. 두 그림 사이에는 사람 몸 미세 조형물이 플라스크 안에 표본처럼 들어간 이동욱의 테이블 설치 작업이 놓였다. 그 옆벽에 내걸린 작품들도 특출하다. 서용선이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그린 군인 군상의 역사화, 허공을 향해 치솟는 분수의 불온한 힘을 포착한 유근택의 일상 회화, 세파에 닳고 찌든 인간의 몸과 살을 파헤쳐 들어간 박치호 작가의 ‘빅맨’ 연작이 그렇다. 바닥에는 과거 열차의 아랫부분을 점검하던 참호 같은 구덩이가 유리판 아래 보존돼 있다. 한국 현대미술의 과거와 현재가 이렇게 역동적인 작품들의 조우로 새롭게 재구성되는 장면은 정비고 공간 곳곳에서 꼬리를 물고 펼쳐진다. 선후배의 각양각색 회화들을 차갑게 쏘아보는 듯한 권오상의 사진 인물상과 몸의 조형물을 잘기잘기 잘라 꺼내놓은 최수앙의 설치 작품, 꽃 위장복을 입은 병사의 애잔한 매복을 보여주는 이용백의 공생 영상물 등이 이어진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기의 역사적 상흔이 한국 현대미술사를 움직여온 주요 작가 18명의 문제작들과 독특하게 어울려 흘러가는 이 전시의 제목은 ‘광장의 기억’(8월25일까지)이다. 국립진주박물관,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철도문화공원으로 장소를 나누어 지난 15일 개막한 한국 채색화 특별전 ‘이미지의 미래들―서사하는 기억, 채색화를 넘어’의 세 딸림 전시 가운데 하나다. 한국 근현대사 공간과 개인의 작업적 경험을 교차시키는 보기 드문 틀거지를 내세웠다. 김기라 작가가 전체 예술감독을 맡은 ‘이미지의 미래들’전은 박생광, 이성자 등 한국 근현대 채색화 대가를 배출한 진주의 채색화 전통을 새롭게 조명하고 현대미술로 확대해 살펴보고자 마련한 대형 프로젝트다. 국립진주박물관에 박생광의 오방색 무속채색화를 필두로 13명의 작가가 펼친 딸림 기획전 ‘시간의 중첩’(7월26일까지)은 전통을 현대적 이미지로 재해석해온 한국 현대미술의 여러 시도를 조명한다. 고미술, 출토 유물만 다루던 박물관 공간에 노상균 작가가 현대 재료로 만든 불두·불상과 이수경 작가의 도자 파편 조형물 등을 배치해 유물 보듯 현대미술품을 살피는 색다른 흥취의 감상 공간을 빚어냈다. 이성자미술관에 추상미술 중심으로 펼친 ‘내면의 풍경’(8월25일까지)은 한국 추상미술 이면의 정서적 맥락을 살펴보는 전시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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