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법인, 이제 굴레를 벗겨주자 [아침햇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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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法人)에는 사람 인(人) 자가 들어 있다. 혼자서는 못 이루는 일을 여럿이 모여 이루라고 법이 부여한 또 하나의 인격이다. 그러나 모든 법인이 같은 방식으로 태어나지는 않는다. 이윤을 추구하는 영리회사는 요건을 갖춰 등기하면 그날로 태어난다. 반면 이웃을 돕고, 약자를 보살피고, 사회의 난제를 풀겠다고 나선 비영리단체는 시작부터 주무관청 공무원의 자의적 ‘허가’라는 문턱을 넘어야 한다. 영리는 등기로, 공익은 허가로 태어난다. 공익법인이 태어날 자격을 관청이 쥐락펴락하는 민법 제32조다. 그 민법 제32조가 지금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에 올라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행정법원이 위헌 여부를 물었다. 법 제정 67년 만에 처음이다. 발단은 아이들의 토론과 사회 참여를 오랫동안 도와온 한 청소년 단체였다. 이 단체는 2024년 사단법인 설립을 신청했다가 거부당했다. 사무소가 서울에만 있고 재정 기초가 약하다는 이유였다. “얼마가 있어야 하느냐”는 물음에는 기준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단체는 물러서지 않았고, 법원이 그 손을 들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 했다. 설립 문턱을 넘어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정관의 사업 내용을 한줄 바꾸려 해도, 재산을 처분하려 해도 일일이 주무관청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공무원이 바뀌면 사전 협의가 번복되고, 법적 근거가 없는 서류를 요구받기 일쑤다. 오래된 한 여성단체는 지부를 독립 법인으로 분리하는 데 다섯해를 허비했다. 똑같은 정관을 들고 가도 지역마다, 담당자마다 답이 달랐다. 현장에선 민법 위에 ‘주무관법’과 ‘공무원법’이 있다는 자조가 터져 나온다. 들어오는 문에 빗장이 걸렸다면, 나아가는 길에는 브레이크가 걸려 있다. 기부는 받기 어렵고, 받은 돈은 쓰기 어렵다. 모은 자산을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에 투자하거나 빌려주려 하면 ‘수익사업’이라며 발목을 잡는다. 정관에 적힌 사업을 더 잘하려는 새로운 시도도 공무원의 판단에 따라 수익사업으로 오인되거나, 낯설다는 이유로 가로막히기 십상이다. 법이 규정하는 공익은 자선과 장학 같은 낡은 목록에 머물러 있고, 지역을 살리려는 청년들의 혁신적인 활동이 공익에 부합하는지는 공무원의 해석에 달렸다. 돈을 쓰는 길만 막힌 게 아니다. 흘러드는 통로도 좁다. 공익 활동은 여전히 정부 보조금에 기대어 있고, 자산은 잠겨 있으며, 기부의 물줄기는 가늘다. 기본 재산은 헐지 못하게 묶어두고 그 수익만 쓰라고 하니, 운영은 움츠러들고 재산이 적은 법인은 공익사업을 벌일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후원하고, 공익법인이 자산을 운용해 장기적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문화와 제도는 뿌리내리지 못했다. 세계기부지수에서 한국이 119개국 중 88위에 머무는 까닭은 시민이 인색해서가 아니다. 공익을 키우는 제도가 낡았기 때문이다. 정작 들여다봐야 할 곳은 한없이 헐겁다. 들어올 땐 그토록 까다롭게 굴면서, 세워진 뒤로는 회계 장부의 숫자만 맞으면 그만이다 . 단체가 정말 공익에 보탬이 되었는지는 묻지 않는다 . 규제는 빡빡한데, 키우는 손도 보살피는 눈도 없다. 이 완고한 빗장은 6·25 피난길에 쓰인 민법에 뿌리를 둔다. 사람들이 모이는 것 자체를 국가가 두려워하던 시대였다. 당시 제정 기록을 보면 공익을 앞세워 불순한 행위를 하는 단체를 걸러내야 한다는 취지가 적혀 있다. 법인의 탄생을 결사의 자유가 아닌 의심의 대상으로 본 것이다. 해묵은 불신 위에 세워진 법이다. 세계 주요국들은 규제를 푸는 동시에 액셀을 밟았다. 독일과 스웨덴은 주식 기부에 한도를 두지 않으며, 미국과 일본도 폭넓게 면세한다. 공익법인이 자산을 운용해 자립하고, 다른 공익조직에 투자해 생태계를 키우도록 길을 열었다. 허가주의를 고수하는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사실상 한국뿐이다. 영국·오스트레일리아·일본 등은 공익 감독기구를 신설해 설립과 육성, 감시를 일원화했다. 반면 우리는 설립은 주무관청이, 세금은 국세청이, 모금은 행정안전부가 따로 관리한다. ‘막는 법’을 ‘키우는 법’으로 바꿔야 한다. 핵심은 규제 완화가 아니다. 투명성과 공익성은 엄격히 확보하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공익을 조직하고 자산을 모아 사회 문제를 풀 공간을 넓히자는 것이다. 옥죄던 손을 거두는 대신 잘못을 사후에 엄히 묻는 신뢰의 방식이다. 두려움과 의심이 빗장을 걸어 잠그던 시대는 지났다. 공익을 일구는 단체들은 국가와 시장의 손이 닿지 않는 사회적 사각지대를 메운다. 이제 결사의 자유를 가두어둔 1958년의 낡은 빗장을 풀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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