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민주주의’를 넘어 [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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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용지 부족이 촉발한 서울 잠실 시위는 선거관리위원회의 곪은 치부를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 고대 로마 시인 유베날리스의 시구이자 그래픽노블 ‘와치맨’의 대사가 떠오른다. “감시자는 누가 감시하는가?” 이 질문은 오늘 대한민국에도 적실하다. “관리자는 누가 관리하는가?” 선관위 전면 개혁에는 대다수 시민이 찬성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잠실 시위에서 나오는 ‘재선거’ 요구에는 의견이 첨예하게 갈린다. 법조인들은 현행법상 재선거는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젓는다. 물론 법률적 검토는 중요하지만, 더 주목해야 하는 건 ‘참정권 침해’를 규탄하는 시민의 분노다. 박근혜 국정농단이나 윤석열 계엄에 대해서도 목소리 높이지 않던 이른바 에스엔에스(SNS) 인플루언서들이 이번 사안에서는 혁명군처럼 들고일어났다. 투표용지 부족이 왜 이토록 격렬한 투쟁의 불씨가 되었을까? 여러 정황과 발언을 보면, 적어도 처음 모인 시민 중에 부정선거 음모론자가 주류는 아니었다. 그들은 다만 참정권 침해 자체를 ‘절대적 부정의’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잠실 시위는 극우 세력에게 잠식당해 버렸으나 처음엔 분위기가 달랐다. 시위를 제안하고 잠실 개표소에 모인 이들은 스스로 정치와 무관한 ‘순수일반시민’임을 강조했다. 초기 잠실 시위는 윤석열 탄핵 시위같이 권력의 전횡에 맞선 싸움이라기보다 자기 권리 침해에 맞선 싸움이었다. 권력의 전횡이 곧 ‘주권’의 침해이니 같은 것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실은 상당히 다르다. 이른바 ‘국민주권’이라는 것은 ‘일반의지’처럼 모호한 것인 반면, 나에게 반드시 투표용지가 배당돼야 하는 투표권은 명백한 물성을 통해 효능감을 주는 ‘나의 고유 권리’이다. 그렇기에 시위 내부의 ‘가짜 주권자’이자 ‘사이비 자격자’, 곧 ‘중국인’으로 상징되는 존재를 찾아내는 것은 절체절명의 사명이 된다. 2002년 촛불시위 이래 사회를 크게 뒤흔든 시민 저항은 각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중대한 유사성이 있었다. 비폭력·순수성에 대한 강박적 집착, 정치적 발언과 ‘외부 세력’에 대한 극단적 거부감, 지도부(위임 권력) 불신, ‘엔(n)분의 1’의 다수결주의 등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언론은 “낡고 폭력적인 운동권 문화를 넘어선 새로운 민주주의 모델”이라 칭송했다. 실제로 촛불시위나 이화여대 미래라이프대 반대 투쟁 등은 비폭력, 지도부 없음, 온라인 중심이라는 밀레니얼 반정부 시위의 글로벌 트렌드를 일찍이 선취한 것이었다. 이런 특성의 바탕에 있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최소주의적 인식이다. 이를테면 ‘최소한의 민주주의’다. 글자 그대로 “최소한 이것만 하자”는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시위의 목표는 대체로 온건한 주류·정상성에 머물렀고, 조금이라도 급진적인 이야기는 검열당하고 축출됐다. 트집 잡힐 빌미를 주지 않아서였을까, 그 시위들은 민주주의의 최저선, 즉 형식적 민주주의를 방어하는 데 아주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사회경제적 불평등이나 승자독식 정치제도 같은 구조적 문제, 즉 실질적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데는 극히 무능했다. 최소한의 목표가 달성된 순간 시민들은 일상으로 돌아갔고 정치적 성과는 기득권 정당이 고스란히 탈취해 갔다. 광장의 ‘순수일반시민’은 그렇게 ‘축제와 탈진’을 반복해왔다. 최소한의 민주주의는 종종 최대한의 소비자주의로 구현된다. 소비자주의는 무척 편리한 도구다. 지불한 만큼의 권리와 자격을 요구할 수 있는 정당화 기제이면서 동시에, ‘외부 세력’ 혹은 ‘중국인’으로 상징되는 공동체의 타자와 무임승차자를 차단하는 방어기제로도 기능하기 때문이다. 시민과 소비자는 근대적 개인이라는 면에서 유사하지만 시민적 평등이 ‘아무나의 평등’인 반면, 소비자 평등은 능력과 자격만큼의 평등, 즉 구매자와 비구매자 사이의 본질적 불평등을 내포한다. 극우가 ‘불평등을 당연시하는 우파 중에 현 체제를 변화시키려는 집단’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최대한의 소비자주의는 생각보다 훨씬 극우 이념에 가깝다. 관리자는 누가 관리하는가? 법조인, 정치인, 엘리트 관료들일까? 소비자주의로 무장한 ‘순수일반시민’일까? 아니다. 오직 민주주의를 신뢰하고 정치적으로 조직된 시민만이 관리자를 관리할 수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잠실 시위를 시작한 ‘순수일반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말 걸어야 한다. 그들이 부정선거 음모론자가 되거나 극우화되는 것을 방치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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