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퀴어 여성의 이장 도전기…혐오에 맞선 명랑한 저항 [.txt]
중년 레즈 명랑 코미디. 지금까지 한국 영화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새로운 장르가 등장했다. 이유진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코미디는 기세와 용기”라고 말했는데, 그의 장편 데뷔작인 ‘이반리 장만옥’은 그에 걸맞은 패기로 빛난다.
만옥(양말복 분)은 20년 전 고향 ‘이반리’를 떠나 서울에 자리를 잡고 퀴어들의 아지트인 레즈비언 바 ‘레인보우’를 운영하고 있다. 입만 열면 “나 때는 말이야”라고 잔소리를 늘어놓는 만옥은 “꼰대”이기는 해도 퀴어 공동체에는 없어서는 안 될 기둥 같은 존재다.
그러나 세월은 흐르고, 시대는 변하며, 그에 따라 관계 역시 달라지는 법. 공동체의 친구들이 새로운 아지트로 떠나고 오랜 연인인 금자(김정영 분)조차 자신에게 등을 돌렸다는 생각이 들자, 만옥은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비빌 언덕이라고 생각했던 ‘선택 가족’(혈연이나 혼인 계약을 넘어 자발적 선택에 따라 묶인 돌봄 공동체)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만옥은 기왕에 망해가던 장사를 접고 짐을 챙겨 이반리로 돌아온다.
고향에서 만옥을 기다리는 것은 옛 친구와 가족의 환대만은 아니다. 평온한 마을에는 만옥이 마주해야 할 과거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다. 바로 만옥의 전남편이자 이반리의 실세인 이장, 철주(박완규)다. 다른 여자 때문에 자신을 버리고 떠난 만옥을 여전히 용서할 수가 없는 철주는 만옥이 뭐라도 할라치면 사사건건 나타나 옹졸하기 짝이 없는 방해 공작을 펼친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만옥은 코앞으로 다가온 이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철주가 장악한 마을 정치에 도전장을 내민다. 이렇게 시작된 선거 캠페인은 이반리를 뒤흔드는 한판 소동극으로 이어진다. 과연 만옥은 철주의 철옹성을 부수고 이반리의 이장이 될 수 있을까?
“중년 퀴어 여성이 보수적이라 여겨지는 시골에서 살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질문에서 시작한 영화에서 만옥의 고향은 지극히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농촌 공동체로 묘사된다. 가부장적 질서와 정상성의 관념이 공기처럼 존재하고, 은근한 방식으로 남성 우위가 지속되고 있는 작은 마을에서 성소수자의 자리는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은 그야말로 ‘이반리’. 여기에도 ‘이상한 사람들’이 발산하는 무지갯빛이 존재한다.
‘이반’은 우리 사회가 이성애를 일반(一般)적이라고 여기는 것에 빗대어, 성소수자들이 스스로를 ‘이반’(二般/異般)이라 명명했던 한국 퀴어 역사로부터 비롯된 말이다. 균질하다고 믿어온 ‘1’들의 세계에 다채로운 ‘2’를 더하는 것, 그것도 유쾌한 언어유희를 통해 그렇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이반’의 상상력이다.
퀴어들의 은어가 충청도 어느 시골 마을의 행정구역 이름이 되는 순간, 이 장소는 일반과 이반, 도시와 시골,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현실과 판타지 등의 이분법적 구획을 뒤흔들고 위반하는 경계적 공간이 된다. 바로 이곳에서 무지갯빛 프라이드 플래그는 태극기와 함께 휘날리고, 드래그퀸은 트랙터와 함께 춤을 춘다.
동시에 이반리는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레즈비언인 만옥이 이장 선거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고, 철주의 “딸내미가 아닌” 자식 재연(성재윤)의 성별정체성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자, 마을에는 ‘외부 세력’이 등장한다. 바로 ‘동성애 아웃’과 차별금지법 반대를 외치는 극우 개신교도들이다.
이들은 철주에게 성소수자 혐오 집회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철주는 마을 사람들을 선동해 반-퀴어, 반-장만옥 운동을 조직한다. 평화롭던 마을은 순식간에 성소수자 증오 발언이 확성기를 타고 울려 퍼지는 아수라장이 된다. 흔히 ‘이반’적인 사람들이 공동체에 문제를 일으킨다고들 생각하지만, 정작 갈등과 분란을 조장하는 건 그런 소수를 기꺼이 차별하고자 하는 이들이라는 역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이 난장판의 한가운데에서 만옥과 그의 퀴어한 친구들은 다시 한번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저항한다. 이 장면을 보면 얼마 전 지방선거 기간 서울 거리에서 마주쳤던 “동성애 반대, 차별금지법 반대”라는 현수막을 떠올리게 된다. 이는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한 후보자의 선거 캠페인이었다. 서울의 교육을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누군가의 존재를 부정하고 차별을 선동하는 모습을 부끄러움 없이 전시하는 풍경을 보는 마음이 씁쓸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퀴어는 학교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교육에 필요한 것은 차별과 혐오의 추방”, “청소년 성소수자는 어디에나 있다” 등의 현수막이 함께 걸리기 시작했다. 유권자이자 시민들이 혐오 발언에 대항 발언으로 응수한 것이다. 잘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기대어 공포를 선동하고 확대하는 행위에 ‘존재함’ 그 자체로 저항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퀴어의 저항법이고, 이반리에서 만옥과 재연이 자신의 자리를 찾는 방법이다.
‘이반리 장만옥’은 한국 퀴어 공동체가 쌓아온 역사 속에서 등장한 영화다. 그리고 무엇보다 혐오의 시대를 건너가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다. 증오가 크고 센 스피커를 쥐고 있을수록 웃음은 더욱 정치적이 된다. 이 작품은 그 사실을 명랑하게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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