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살리는 뉴스, 사람을 죽이는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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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루머의 루머의 루머’(원제 13 Reasons Why)는 미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청소년 주인공의 자살 원인을 추적하는 내용의 이 드라마가 공개된 직후인 2017년 4월, 미국 10~17살 청소년 자살률은 약 30% 가까이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이 작품은 미디어가 모방 자살을 증가시킬 수 있는,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베르테르 효과란,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출간된 뒤 유럽 청년층에서 주인공을 모방한 자살이 잇따랐다는 데서 유래한 용어다. 이후 전문가들은 유명인의 죽음이나 자극적인 언론 보도가 모방 자살 증가로 이어지는 현상을 베르테르 효과라 명명했다. 한국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2024년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29.1명으로, 201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전체 자살 사망자 수 역시 전년 대비 894명 증가했다. 특히 증가 폭은 1월에 가장 컸고, 그 흐름은 2~4월까지 이어졌으나, 4월 이후에는 전년과 유사하거나 오히려 낮은 자살 사망자 수를 기록했다. 다시 말해, 2024년 자살률과 자살 사망자 수 상승은 연초에 나타난 급격한 증가에 의해 대부분 설명된다. 그렇다면 그 무렵 우리 사회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배우 이선균씨가 2023년 12월27일 세상을 떠났다. 월별 자살 사망 통계를 보면, 2024년 1월 남성 자살 사망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40% 이상 증가했다. 증가분의 상당수는 중년 남성이었고, 사용한 수단 역시 유사한 경우가 많았다. 물론 특정 유명인의 사망과 이후 자살 증가 사이의 인과관계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시기적 근접성과 수단의 유사성, 그리고 3월 이후 자살 사망자 수가 다시 전년 수준에 가까워졌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두 현상이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당시 보도 방식이었다. 국민적 인지도가 매우 높았던 배우의 죽음은 며칠 동안 헤드라인을 뒤덮었고, 유서와 장소, 수단 등 세부 정보까지 거의 실시간으로 소비됐다. 이는 베르테르 효과를 방지하기 위한 ‘자살예방 보도준칙 4.0’의 첫번째 원칙, “자살 사건은 가급적 보도하지 않는다”와 두번째 원칙, “구체적인 자살 방법, 도구, 장소, 동기 등을 보도하지 않는다”에 완전히 위배되는 것이었다. 다행히 이후 언론 보도 방식에는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최근에는 기사 제목에서 ‘자살’이라는 표현 대신 ‘사망’, ‘숨져’ 등의 표현을 사용하고, 구체적 방법을 노출하지 않는 사례도 늘고 있다. 정신건강 전문가들, 그리고 언론계 내부의 꾸준한 문제 제기와 언론인들의 공감과 자정 노력이 만들어낸 변화일 것이다. 매우 의미 있는 진전이다. 하지만 이제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자살 사건은 가급적 보도하지 않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자살 관련 언론 보도 개선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오스트리아의 예이다. 1980년대 빈에서는 지하철 투신자살이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당시 언론은 사건을 반복적이고 선정적으로 보도했고, 이후 모방 자살 증가가 문제로 지적됐다. 이에 오스트리아 언론 협회와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자살 방법과 장소의 구체적 묘사를 제한하고, 자극적 반복 보도를 줄이며, 대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담 기관 정보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보도 원칙을 바꾸었으며, 이는 전반적인 자살 사건의 보도 감소로 이어졌다. 그 결과 빈의 지하철 자살은 약 75% 감소했고, 전체 자살률 역시 약 20% 감소한 것으로 보고됐다. 이는 흔히 ‘파파게노 효과’의 대표 사례로 언급된다. 파파게노 효과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유래했다. 실연 끝에 삶을 포기하려던 주인공 파파게노가 세 요정의 도움으로 다른 선택지를 발견하며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이야기다. 즉 언론이 자살 사건을 극적으로 소비하는 대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과 회복의 가능성을 보여줄 때 자살 예방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같은 사건이라도 어떻게 보도하느냐에 따라 언론은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은 자살 보도에서 가장 무겁게 다가온다. 나는 언론인들이 자살 사건을 기사화할 때마다 그래프 속 숫자만이 아니라 그 숫자 뒤의 사람들을 함께 떠올려주길 바란다. 우리는 흔히 “10만명당 29.1명”과 같은 방식으로 자살률을 이야기하지만, 그 숫자 뒤에는 소수점으로 환산할 수 없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존재한다. 누군가의 자녀이고, 부모이고, 형제자매이고, 친구였던 사람들이다. 개별적 죽음을 반복적으로 소비하는 기사보다, 왜 이런 죽음이 반복되는지 구조적 원인을 묻고 국가의 책임과 대책을 요구하는 기사가 더 많아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언론 환경은 종종 그 반대로 움직인다. 클릭 수가 기사 가치의 핵심 지표가 되는 구조 속에서 자극적 보도는 쉽게 확산된다. 하지만 자살 문제만큼은 달라야 한다. 언론은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자살 예방의 중요한 주체이기 때문이다. 자살은 단일 원인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사회·경제·심리 문제의 총체이므로, 자살 예방에는 여러 정부 부처의 협력뿐 아니라, 언론 역시 핵심적 역할을 맡고 있음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이 글을 읽는 언론인들에게 부탁드린다. 자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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