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논쟁 깨울 ‘픽션’이 필요해 [똑똑! 한국사회]
기후 시나리오에는 여러 경로가 있는데, 그중 최악의 경로가 최근 무대에서 내려갔다. 지난 4월, 국제 연구진이 다음 기후보고서에 쓰일 시나리오를 새로 제안하면서 가장 비관적인 경우의 시나리오를 더 이상 고려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2100년까지 화석연료 사용을 계속 늘려 이산화탄소 농도가 지금의 세배에 이르고,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4.5도 오른다고 가정하는 시나리오이다. 이 결정을 두고 몇달째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한쪽은 그동안의 예측과 경고가 과장이었다고 비난하고, 다른 쪽은 정책과 기술이 효과를 낸 결과라고 반박한다. 이 최악의 시나리오는 일어날 법한 미래라기보다 일종의 상한선이었다. 재생가능한 에너지 생산 비용과 기후정책의 변화로 여건이 달라지면서 가장 비관적인 가정 하나가 빠지고 상한선이 조금 낮아진 것뿐이다. 그렇다고 기후변화가 멈췄다거나 심각성이 덜해진 것은 전혀 아니다. 각국이 2050년까지 약속한 탄소중립 목표를 모두 지킨다 해도, 2100년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1.9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역시 여전히 매우 높은 수치다. 그런데 기후 문제가 이슈로 떠오를 때마다 나타나는 현상이 두가지 있다. 하나는 이 논쟁에 전문가가 아닌 보통 사람은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지켜보는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전문용어와 숫자를 익히며 따라가거나 그냥 외면하는 것, 둘 중 하나뿐이다. 또 하나는 이 구조가 당장의 문제를 나중으로 미뤄놓는다는 것이다. 대응 시나리오는 필연적으로 먼 미래를 기준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데, 그 때문에 언뜻 보면 기후 문제를 ‘먼 미래의 일’처럼 여기게 된다. 한편, 우리에게는 기후 문제와 만나는 다른 통로가 하나 더 있다. 뉴스나 다큐멘터리, 교양서 같은 논픽션이 아니라 소설, 영화, 카툰 같은 ‘지어낸 이야기’, 즉 픽션의 세계다. 어떤 의미에서는 기후 픽션도 일종의 ‘기후 시나리오’다. 전문가들이 숫자와 그래프로 가능한 상황을 시뮬레이션한다면, 픽션은 인물과 사건으로 같은 일을 한다. 우리는 매일, 매주 자발적으로 이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인류는 언제나 지어낸 이야기로 세계를 이해해왔다. 복잡한 현실을 기억하고 공유하며 문제를 드러내는 이 오래된 본능은 어느 때보다 지금 활발히 작동한다. 매일 쏟아지는 카툰과 소설, 영화 등 픽션들의 양은 우리가 모두 소화하기 어려울 정도다. 문제는 수많은 픽션 안에서 기후변화는 중심 주제가 아니라 거의 배경으로만 쓰인다는 점이다. 사회적 이슈가 되기 위해서는 이야기 속에서 전면적인 주제로 다뤄져야 한다. 드라마 ‘참교육’ 이전에도 교육 문제는 존재했고, ‘오징어 게임’ 이전에도 양극화와 가계 부채, 실직 문제는 중요한 사회문제였다. 그런데 이 드라마들이 등장하자 우리는 마치 기존의 문제들을 새롭게 발견한 것처럼 새삼스레 치열하게 논쟁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기후 문제는 왜 같은 방식으로 다뤄지지 못할까? 기후 소설, 기후 영화, 기후 카툰의 배경은 왜 거의 언제나 현재가 아니라 먼 미래나 우주일까? 작년 제14회 박경리문학상을 받은 인도계 미국 소설가 아미타브 고시는 문학이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역사 속에서 전쟁이나 생태적 재난 같은 위기에는 언제나 적극적으로 반응해왔지만 유독 기후변화에는 느리고 소극적으로 반응한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문학을 비롯한 문화 매체 자체가 우리의 욕망을 키워온 기반을 표현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가리는 장치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기후위기는 문학의 위기이자 상상력의 위기라고 지적하면서 문학의 새로운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기후위기는 논픽션의 세계에서 픽션의 세계로 확장되어야 하며, 그럼으로써 다시 논픽션의 세계에 상상력을 부여할 수 있다. 어떤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함께 모여 들여다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 전문가이든 아니든, 관심이 많든 적든 모두가 한자리에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그 장이 바로 우리가 매일 자발적으로 들어가는 픽션의 세계이다.
📌 Kayn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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