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구 못 찾는 우크라전쟁…푸틴, 젤렌스키의 종전 회담 제안 일축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전쟁을 끝나기 위한 제3국에서의 회담을 제안했다. 러시아는 ‘젤렌스키가 모스크바로 오라’며 일축했다. 양쪽 다 전쟁의 막대한 인명 피해에 괴로워하면서도 이를 끝낼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 매체 르몽드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5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누리집에 게시한 공개 서한에서 푸틴 대통령을 향해 “이 전쟁을 끝낼 것을 제안한다. 그것은 정직하고 품위 있게 이뤄져야 하며, 전쟁이 다시 불붙지 않을 것임을 보장해야 한다”며 “회동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그는 두 나라 수도가 아닌 제3국을 회담 장소로 제안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스위스, 튀르키예, 아랍권 국가처럼 많은 나라들이 회동을 주최할 수 있고 또 이를 원하고 있다”고 썼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 제안을 환영했다. 그는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그들이 만남을 논의하고 있다니 기쁘다. 우리가 거기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만나면 아주 좋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젤렌스키는 언제든 모스크바에 올 수 있다”며 제3국 회동을 거절했다. 푸틴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의 서한을 보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는 앞서 지난해 9월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양자 회담을 제안했을 때도 ‘젤렌스키가 모스크바로 오면 된다’고 답한 바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협상을 위해 러시아로 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긴 전쟁으로 서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데다, 한쪽 정상이 적국으로 가면 항복하는 모양새가 되는 탓이다. 그는 이날 서한에서 “당신의 대표자들은 내가 모스크바에 오면 된다는 식으로 말한다. 하지만 이런 시간을 보낸 뒤 우크라이나 지도자가 당신 수도에서 할 일은 없다. 러시아 지도자가 키이우에서 할 일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우크라이나가 종전 회담을 제안하고 나선 건 양쪽 인명피해가 너무 불어난 탓이다. 영국 정보기관인 정보통신본부(GCHQ)의 앤 키스트버틀러 국장은 지난달 취임 연설에서 2022년 2월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군 누적 사망자를 50만명으로 추산했다. 앞서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1월까지 러시아군 사망·부상·실종자가 120만명에 이른다고 봤다. 우크라이나 쪽에서도 같은 기간 50만∼60만명이 죽고 다치고 실종된 것으로 추계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서한에서 “어제 나는 당신 군대의 5월 손실에 관한 (정보부대) 보고를 받았다. 3만명 넘는 러시아인이 전사하거나 중상을 입었다”고 푸틴 대통령을 압박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우리 국민을 잃고 있다”며 “(방어하는 입장인) 우크라이나 손실이 러시아 손실에 견줘 5분의 1 또는 6분의 1 정도라고 해도, 그것은 여전히 매우 큰 의미”라고 인정했다.
러시아 역시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우크라이나가 순항 미사일을 개발하는 등 장거리 타격 능력을 기르면서, 모스크바 같은 내륙 대도시까지 공습 경보가 일상이 됐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를 방문할 때도 드론 방어 시스템을 갖춘 차량 20대와 헬리콥터를 대동한 바 있다. 그가 우방국 순방에 이만큼의 경호 행렬을 대동한 건 이례적이어서 눈길을 모았다. 서방의 경제 제재와 전쟁 비용 지출로 경기 침체도 길어진다. 러시아 정부는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9월 발표한 1.3%에서 최근 0.4%로 낮췄다. 1∼4월 정부 재정 적자가 올 연간 전망치의 55%에 이른다.
하지만 크렘린으로선 전쟁을 접기도 곤란한 지경이다. 전쟁의 막대한 ‘매몰 비용’에 견줘 얻은 게 적기 때문이다. 러시아 정부는 애초 우크라이나 정권 전복을 공언하며 전쟁을 시작했지만, 4년 넘게 수도 키이우는커녕 동부 요충지 돈바스(도네츠크·루한스크주)도 점령하지 못하고 있다. 목표에 한참 못 미친 채 우크라이나 제안대로 종전하면 민심 이반이 심각해질 수 있다.
독일 베를린에 있는 싱크탱크 카네기 러시아 유라시아 센터의 타티아나 카스투에바-장은 르몽드에 “푸틴 대통령은 (2000년) 집권 이후 전례 없는 도전들의 조합에 직면했다”며 “이기지도, 포기하지도 못하는 전쟁의 포로가 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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