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투표용지 부족’ 국정조사, 선관위 해체 수준 개혁해야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5일 지난 6·3 지방선거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그는 “국민의 소중한 참정권을 침해하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번 사태는 민주주의의 핵심인 선거제도에 대한 불신을 일으킨 ‘국기문란’ 사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선거의 신뢰와 공정성을 제고해야 하는 선관위가 불신을 조장했다는 점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중앙선관위원장의 사퇴와 사과로 끝낼 일이 아니다. 여야가 국정조사에 뜻을 모은 만큼 이번 사태의 원인을 철저하게 규명하는 한편, 선관위 전반에 대한 감찰과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중앙선관위가 이날 밝힌 해명은 들을수록 황당하다. 투표 당일 서울시선관위는 이미 오전 11시40분께 송파구선관위로부터 투표용지 부족이 우려된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서울시선관위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투표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송파구선관위에 상주 직원이 없어서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 같다’는 납득할 수 없는 변명을 했다. 2022년 대선 당시 코로나 확진자 사전투표에서 ‘소쿠리 투표’ 논란을 겪고도 이런 무능한 행태가 반복되다니, 헌법기관으로서의 자격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번 선거는 높은 투표율이 이미 예고됐다. 중앙선관위가 지난달 실시한 유권자 의식조사 결과 응답자의 73.6%가 “반드시 투표할 것”이라고 답했고, 실제 사전투표율도 23.5%로, 지방선거 기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중앙선관위는 투표용지 최소 인쇄 수량을 유권자의 50%로 유지했다고 한다. 투표용지가 남는 것을 방지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더욱 어이없는 일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집중됐던 송파구는 정작 투표용지가 4만장 이상 남았다는 사실이다. 투표소별로 배정된 투표용지의 10%를 선관위에 따로 보관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선거 후 남는 투표용지가 부정선거 음모론에 빌미를 주는 것을 막기 위한 조처였다고 한다. 유권자가 투표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선관위의 기본 업무다. 음모론자들에게 책잡히는 게 두려워 기본을 망각했다는 것인가.
김민석 국무총리는 이날 이번 사태에 대해 “필요하다면 국회의 국정조사나 특검을 통해서라도 확실한 규명과 제도 개선을 이뤄내야 할 것”이라며 “수사를 포함한 모든 수단과 조치를 통해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선관위가 독립기관이라는 사실은 권한을 보장한다는 뜻이지, 실패에 대한 책임까지 면제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힘이 4일 국정조사를 제안한 데 이어, 더불어민주당도 5일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정조사에서 이번 사태의 원인은 물론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선관위의 구조적 문제점까지 파헤쳐야 한다. 중앙선관위원장(대법관)과 시도선관위원장(법원장) 등 사법부가 선관위를 ‘겸직’하는 구조 탓에 선거 업무의 전문성이 떨어져 이런 사태가 반복된다는 지적도 있다. 모든 대안을 망라해서 선관위를 해체 수준으로 개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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