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기지는 안보 자산인가? [정의길의 세계, 그리고]
미국 군사력의 우위는 대양을 건너 군사력을 전개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 등 다른 나라들이 넘볼 수 없는 미국만의 능력이자, 패권의 주축이다.
이런 군사력은 전세계 약 80개국의 750여개 미군 기지 및 시설에다가 정밀유도무기를 전개하는 항공모함 등 원양 해군력에 기반한다. 특히 전세계의 미군 기지 및 기지 접근권은 원양 해군력에도 필수적이다. 근처에 우호적 항구가 없다면, 미 항모는 보급을 받을 수 없어서 작전은 불가능하다.
2차 대전 이후 웬만한 나라들은 주변에 전쟁이 일어나면, 미국에 자국 기지나 영토 사용을 허용했다. 해당 분쟁의 상대 쪽으로부터 보복을 받을 가능성이 없었고, 미국의 지원을 대가로 받을 수 있었다. 미국의 압도적인 첨단 군사력이 교전 상대에게 그런 보복을 허용하지 않았다.
1991년 걸프 전쟁 때 미국은 이라크와 접경한 튀르키예의 인지를리크 공군기지에 첨단 전투기를 배치해 이라크의 위협을 무력화했다. 9·11 테러 뒤 아프가니스탄 침공 때 미국은 인근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의 기지를 이용하고 병력을 투입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때부터 제한이 걸렸다. 튀르키예는 미군이 자국 영토를 통해 이라크 북부 전선을 여는 것을 반대해 충격을 줬다. 아프간 전쟁 때인 2011년 파키스탄은 카라치와 아프간을 잇는 통신선을 폐쇄했다.
미국-이란 전쟁은 미국의 기지 접근권에 변곡점이다. 미국은 중동 전역에서 최소 19개 거점에 기지와 시설이 있고, 이 중 8개는 바레인·쿠웨이트·카타르·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에 위치한 영구 기지다. 요르단을 더한 6개국의 미군 기지는 이란의 공격으로 거의 불능화됐고, 이 와중에서 해당 국가들은 민간 시설들까지 공격받아 큰 피해를 봤다. 개전 2주 만에 이 미군 기지들은 사실상 폐쇄되고, 미군들은 기지를 떠나서 호텔이나 사무실에서 근무했다.
미군 기지는 중동 국가들에 안전 보장이 아니라 안보 재앙이 된 셈이다. 오히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국들은 개전 전부터 미국의 자국 영토 및 기지 사용을 거부했다. 스페인은 미국과 공동으로 운영하는 로타 및 모론 기지에 접근을 거부했고, 프랑스와 이탈리아 역시 마찬가지 조처를 취했다. 미국의 최고 동맹이라는 영국도 디에고가르시아 기지 사용을 놓고 마찰했다. 튀르키예는 자국 영공을 방어하는 미국의 방공망 가동만 허락했다.
이란의 드론 및 탄도미사일에 미국의 고가 첨단정밀유도무기 등은 전체 재고의 30~80%가 소모되며 방공망이 뚫려서, 미군 기지가 있는 중동 국가들은 큰 피해를 봤다. 이란은 대양을 건너 전개되는 미 군사력을 막아내는 반접근·지역거부 역량을 보였다.
이제 동아시아로 일제히 눈이 쏠리고 있다. 대만 사태 등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면, 미국은 일본·한국·필리핀·오스트레일리아 등의 기지 및 영토 사용이 필수적이다. 미국에 필적하는 군사력을 갖춘 중국의 반접근·지역거부 역량이라면 미군 기지가 있는 주변 국가들의 피해는 상상하기도 싫다. 그런데 미국 쪽에서는 줄곧 한국과 그 미군 기지를 대중국 공격 자산으로 강조하는 발언이 나온다.
최근 “한반도는 중국에는 단도”라는 발언을 한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은 “한국은 일본과 중국 본토 사이에 떠 있는 섬, 혹은 고정된 항공모함”(2025년 5월 랜팩 심포지엄)이라고 말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동아시아 지도를 동쪽으로 90도로 돌려놓고는 “한반도는 아시아의 취약한 전진 기지가 아니라 방어선 내부의 결정적 공간”이라며 “한국·일본·필리핀을 잇는 전략적 삼각형에서 한국은 한가운데 (전략적) 종심”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한반도가 제1열도선 내부 아시아 대륙에 배치된 유일한 미군 주둔지”(1월13일 호놀룰루 국방포럼)라고 강조했다. 지난 4월 의회 청문회에서는 “한반도는 미국 본토 방어와 역내 미국 이익 증진에 필수적인 핵심 전략 지형”이라며 전시작전권 전환 이후에도 미군이 인도·태평양 전반의 억지력 강화를 위해 한반도를 거점으로 역할을 확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란 전쟁을 계기로 미군 기지와 미국의 기지 접근권은 이제 ‘프리패스’가 아니게 됐다. 미군 기지는 더 이상 무조건적인 안보 자산이 아니다. 우리가 맥 놓고 있다면, 안보에 흉기가 될 수도 있다. 중동 국가들이 미국에 기지 접근권을 불허했다면, 그들에게 큰 피해를 준 이란 전쟁을 미국이 감행할 수 있었을지를 잘 생각해보자. 우선 우리의 전시작전권이라도 시급히 회수해야 할 이유다.
📌 Kayn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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