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선거’라는 망령 [똑똑! 한국사회]
얼마 전 특이한 상담 전화를 받았다. 6·3 지방선거 본투표에 참여하려 공가를 신청했는데 반려당했다는 군인의 항의였다. 근무가 있어 사전투표에 참석하기 어려우냐, 사전투표일이 있는데 굳이 휴가를 받아 본가 쪽 투표소로 가려는 이유가 무엇이냐 물었더니, 사전투표는 부정선거의 의혹이 있기에 본투표에 참석해야 하는데 이를 막는 것은 참정권 침해 아니냐고 답한다. 말문이 턱 막혔지만, 일단 사전투표에 가지 못할 사유가 마땅히 없고, 부대에서 이를 충분히 보장하고 있는 것이라면 참정권 침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말로 상담을 종료했다.
지난 계엄 이후 내란 옹호 세력을 중심으로 퍼지던 부정선거 음모론이 이번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빌미로 더욱 커져버렸다. 어떤 이유를 덧붙이든 1차적으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관리 실패고, 명백한 귀책이다. 헌법기관으로서 이런 빌미를 제공한 것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대대적인 조직 정비가 필요한 것은 여지없는 사실이다. 선관위와 선거 관리 시스템에 대한 재진단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부정선거인가? 본투표 당일, 투표용지 부족으로 일시 중단됐으나 늦게나마 용지는 재공급됐고, 투표도 재개되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언론에 공개한 투표소 담당 공무원들이 모인 카카오톡 방 내용을 보면, 투표소마다 용지 상황을 모니터링 중이었고 일부는 투표 시간 내에 배달된 곳도 있었다. 의혹 해소와 책임 규명은 상황이 실시간으로 공유됐는데도 중앙선관위의 감독과 대처가 어째서 부실했는지 밝히는 것에 집중하면 된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두고 참정권 침해를 넘어 부정선거를 위해 대대적 조작이 이뤄졌다고 단정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부정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부정이란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이득을 취하거나 규칙을 깨는 것을 의미한다. 즉, 부정을 저지르고자 하는 자는 ‘이기고 싶은’ 쪽이다. 그럼 선거에서 이긴 오세훈 서울시장이 부정선거를 했다는 것인가? 이재명 대통령과 여당이 이번 부정선거의 원흉이라고 주장하던데, 그럼 오세훈 시장을 당선시킨 건 이재명 대통령인가? ‘부정선거 음모론자’ 모스 탄 교수의 말처럼 “총알로 이기지 못해서 북한과 중국은 투표로 이기려 하는 것이다. 이번 선거는 명백한 부정선거”라면, 오세훈 시장의 재선은 중국의 이익인가?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자는 소수이고, 서울 잠실에 모인 대다수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참정권 침해 행위라 주장한다고 치자. 그러면 어째서 참정권 침해에 대해 근본적 조치를 원하는 요구보다도 ‘재선거’가 우선의 목표가 되는가. 투표용지 부족이 발단이니 이번 사태의 해결 방안이 유권자 1인 1표를 정해진 시간에 행사할 수 있도록 다시 투표를 진행하는 것이라면, ‘재선거’의 결과에 대해 누가 이기든 상관없이 수용할 것인가.
이번 사태만큼 잘 알려지진 않았더라도, 장애로 인해 투표 보조가 필요한 중증장애인·발달장애인 등에 대한 참정권 침해는 선거마다 대두하는 이슈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재외 선거 사무가 중단되며 재외국민이 거소투표를 하지 못하는 사태도 있었다. 우리 헌법은 장애 등의 사유로 참정권의 행사를 차별하지 않는다. 이 기회를 통해 우리 선거 시스템이 실제로 우리 국민 모두에게 실질적 참정권을 보장하고 있는지 진단하고, 고쳐나가자고 주장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니까,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반발해 잠실에 모인 저 인파,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로 ‘애국청년’의 참여를 호소하는 콘텐츠들, “우리는 중국과 친북 좌파, 지금 정부로 인해 위험에 처해 있는 것”(모스 탄)이라며 선동하는 이들은 무엇을 원하는 것인가. 모두에게 실질적 참정권을 보장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는 거면 왜 죄다 재선거 피켓만 들고 있는가. 그야말로 “하나의 망령이 한국을 배회하고 있다. 부정선거라는 망령이”.
📌 Kayn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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