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반구천 암각화’에 수문·도로라니 [왜냐면]
다음달 12일은 울산 반구천의 암각화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지 1주년이 된다. 한민족 선사시대 기록 문화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전세계가 인정한 지 1년이 되어 가지만, 정작 이를 보존하고 가꾸어야 할 울산시의 행정은 여전히 환경과 문화유산을 파괴하는 과거의 ‘토목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 그야말로 ‘잘못된 단추의 연속’이다.
최근 울산광역시가 고시한 ‘반구천의 암각화 진입 도로 개설 타당성 평가 용역’은 이러한 주객전도식 행정의 결정판이다. 방문객의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이는 멀쩡한 산을 절개하고 콘크리트를 깔아 주변 생태계를 또 한번 짓밟는 행위에 불과하다. 지금 반구천에 필요한 것은 인간의 이기심으로 채워질 새로운 도로가 아니다. 수천년 전 선사 인류가 고래를 만나기 위해 드나들던 원시 비경의 ‘옛길’을 되살리고, 단절된 자연 생태 경관을 총체적으로 회복하는 것이 세계유산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다.
울산광역시가 현재 강행 중인 사연댐 수문 설치 역시 암각화의 온전한 보존이 아닌, ‘댐의 구조적 안정성’에만 초점을 맞춘 반쪽짜리 토목 공사다. 범람을 방지하기 위한 여수로 고도를 해발 52m로 낮춘들 암각화 하부(53m)와는 불과 1m 차이에 불과하며, 수문 하단이 강바닥 높이(23m)가 아닌 47m에 위치해 있어 홍수 전 미리 댐을 비워두는 홍수 조절 기능 자체가 불가능하다. 결국 집중호우가 내리면 암각화는 또다시 침수될 것이며, 수문 개방 시 발생하는 급류와 토사는 암각화 표면을 타격해 훼손을 더욱 가중할 뿐이라는 수리학적 경고를 울산시는 외면하고 있다.
이제는 사연댐을 유지하려는 ‘물 프레임’에서 벗어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관점의 생태적 대전환을 감행해야 한다. 사연댐은 이미 상류의 대곡댐 건설로 인해 저담수댐으로 전락해 그 기능과 수질이 악화한 상태다. 울산의 공급 용수 부족 문제는 대곡댐에서 언양 태기리를 거쳐 천상정수장으로 이어지는 평지 송수관로를 신설함으로써 얼마든지 안정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사연댐을 과감히 해체하고 반구천의 물길을 완전히 터주었을 때 비로소 위대한 생태적 복원이 시작된다. 지난 60여년간 사연댐에 가로막혀 썩어가던 태화강의 본류가 마침내 하나로 재합수되면, 연어와 황어가 자유롭게 상류로 이동하는 풍부한 자연 생태계의 서식지가 회복된다. 이는 과거 미국이 생태계 복원을 위해 엘화(Elwha)댐을 철거하고 자연의 생명력을 되찾은 세계적 선례와 궤를 같이한다.
또한, 댐 철거로 수몰 지역이 드러나면 1965년 댐 건설 당시 아무런 보호 절차 없이 물속에 묻혀버린 세연·옹태·한실 마을 일대의 선사시대 주거지 유적을 발굴할 귀중한 기회가 열린다. 암각화를 남긴 선조들이 실제 살았던 터전과 자연환경을 함께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문화 영토 회복이다.
반구대 암각화 앞 토사를 걷어내야 한다. 반구대는 사냥의 기원과 포획의 감사, 죽은 이의 씻김과 고래 위무가 이루어지던 선사시대의 아고라이자 신전(옴파로스)이다. 이제는 그 주변의 장소성과 공간성에 주목할 때다. 이를 바탕으로 반구천 일대를 자연 생태계와 환경·문화·역사가 공존하는 ‘반구천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는 후속 연구가 시급하다.
단순히 물속에 잠긴 암각화 하나만 구하려는 미온적인 대책과 산을 깎아 도로를 내는 토목 행정으로는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유산의 가치를 지켜낼 수 없다. 주변 생태와 지형, 문화경관의 통합적 회복을 위해 사연댐 수문 설치와 도로 개설을 전면 철회하고, 단계적 댐 해체라는 대담한 결단을 내릴 때다. 정부와 울산시의 책임 있는 패러다임 전환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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